한국장학재단 이사장께 호소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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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께 호소드린다

by 경향 신문 2022. 4. 6.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을 출발한 ‘길 위의 신부’ 문정현과 봄바람 순례단이 한국장학재단 대구 본사를 찾았다.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117일째 천막농성을 이어온 장학재단 콜센터 노동자들이 본사 로비 점거에 나선 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사제가 불러온 봄바람으로 가난한 노동자들 마음에 환한 꽃이 피어날 수 있을까.

그러나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한 콜센터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 발표회에서 다시 드러난 우리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힘겨운 삶의 단면은 비유컨대 꽃이 필 만한 봄은 아니었다. 형편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은 채로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긴 시간을 견뎌온 그들은 또한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서 3단계 전환 대상으로 분류되었던 민간위탁 노동자들이기도 하다. 지난 5년을 기다렸어도 그들에게 정규직 전환의 소식은 여태 들려오지 않는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약속한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한 달 남은 지금, 피우지 못한 꽃처럼 노동자들의 마지막 기대도 지고 말까.

사정이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이다. 정부는 2018년 전수실태조사를 거쳐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될 수 있는 민간위탁 노동자를 약 20만명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2019년 2월 발표된 3단계 정규직 전환의 내용은 1, 2단계에 비해 적극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었다. 민간위탁 사업의 직접 수행으로의 전환 여부는 사업장별로 사실상 원청이 결정하도록 맡겨졌다. 오분류로 정규직 전환에서 빠진 경우도 원청 사용자의 조정 신청 없이는 시정할 수 없게 했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원청의 의사결정에 적용할 일관된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 전환의 방식이나 기존 정규직 설득 방안에 대해서도 정부는 손을 뗐다. 그러니 일각에서 이를 두고 민간위탁 존치 정책이라고 비꼰 것은 일리가 있었다. 상시지속 업무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원칙은 사실상 폐기된 셈이었다. 일부 지자체는 직영 사업을 민간위탁으로 돌리는 일까지 버젓이 자행했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은 그렇게 정부 자신에 의해 무너져 내렸다.

공공기관도 상황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장학재단은 2019년 3월 노·사·전문가 협의회를 거쳐 콜센터 업무의 민간위탁을 유지시키고 ‘정규직 전환 예외’로 결정했다. 당사자인 콜센터 노동자들은 당시 협의회에서 배제됐다. 민간 도급업체 중간관리자가 협의회에서 노동자를 대표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결국 2021년 8월 노동부는 재단의 전환 예외 결정 과정에서 절차상 하자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민간위탁 지속 여부를 둘러싼 논의는 내내 지지부진하다.

노조로서는 재단 측이 민간위탁 유지로 몰아가고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기 어렵다. 노동자들은 희망고문에 지쳤다. 한때는 새 이사장님이 오신다고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가 연말까지는 결정된다고 해서 기다렸다. 다시 대선 전까지는 타당성 검토가 마무리된다고 해서 또 기다렸다. 그럴수록 노동자들만 힘이 빠졌다.

실은 한국장학재단만의 문제도 아니다. 정권 말기에 접어들면서 공공기관들은 정규직 전환 정책의 취지를 점점 더 외면하는 모양새다. 경북 경산시는 폐기물 수집운반과 상수도검침 업무에 있어 민간위탁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2019년 5월 대법원의 직접고용 판결에도 불구하고 그 이행을 앞장서 촉구해온 톨게이트 노동자들에게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로 재갈을 물렸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 노동자들은 작년 10월 정규직 전환이 결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환 방식과 임금 체계를 논의할 협의체 구성을 두고 갈등을 겪고 있다.

최근 콜센터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접고용과 간접고용 간에는 노동조건에 있어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장실 이용도 자유롭지 못한 콜센터 노동자들의 열악한 업무 환경을 개선하려면 노동 강도를 낮추고 인력을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저임금에 묶여 있는 급여의 수준을 올리고 숙련이 반영되도록 임금체계도 바꿀 만하다. 감정보호 조치는 필수다. 하지만 단연 첫손에 꼽히는 노동조건 개선은 직영화로 고용불안을 덜어내는 것이다. 재단으로서도 실질적 사용자성을 부인하기 어려워 간접고용으로 기간제 계약을 반복 갱신하는 데에는 위법의 소지마저 없지 않다고 볼 일이다. 그러니 한국장학재단 정대화 이사장께 호소드린다. 콜센터 노동자들은 어떤 전환 방식이나 별도 직군 편성에 대해서도 열려 있으니 민간위탁만큼은 더 이상 없다는 약속만이라도 더 늦지 않게 꼭 해달라고. 문정현 신부의 말씀처럼 우리 노동자들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 힘을 합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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