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의 재창당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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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정의당의 재창당을 위하여

by 경향 신문 2022. 6. 7.

매번 투표할 때면 누구를 찍을지, 어느 당을 찍을지 고민을 하게 된다. 나는 오랫동안 녹색당원이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선택지가 거의 없다. 한동안 권영길에게 투표했고, 문재인에게는 두 번 투표했다. 지난번 대선은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 심상정에게 투표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시장은 권수정에, 정당은 녹색당에, 그리고 나머지는 전부 민주당을 찍었다. 국제 기준으로 나의 사상적 지향점은 생태 좌파로 비교적 단순하다. 녹색당이 힘을 못 쓰는 한국에서만 복잡하다.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와 진보로 진영을 나누는데, 이렇게 나누는 나라는 현재로서는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에서는 보수와 ‘리버럴’, 유럽에서는 좌우로 나눈다. 진보당의 조봉암이 사형당한 후 진보라는 말도 자유롭게 쓰기 어려웠던 나라다. 좌파는 볼 것도 없이 ‘친북’ 낙인이라서 좌파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진보는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표현이다.

이건 내 얘기가 아니라 이제는 고인이 된 노회찬이 종종 하던 얘기다. 그는 진보로 불리고 싶어하지 않고, 좌파로 불리고 싶어했다. 지금의 정의당으로 당명이 결정될 때 노회찬은 사회민주당 정도의 이름을 희망했지만. 표결에서 정의당을 선택한 당원들이 더 많았다. 사민주의도 아직 무섭던 시절이었다.

사민주의 정당 땐 역할 커질 것

다시 시대가 흘렀다. 이제 한국은 벌써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섰고, 1인당 GDP 기준으로는 일본을 넘어서는 단계가 되었다. 선진국 중에서도 앞쪽이 되었다. 개발도상국 시절에는 그래도 선진국이 되는 것이 진보라는 게 어느 정도는 통했는데, 이제 더 이상 진보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여기서 어디를 더 가야 해? 좌파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대안적 자세라는 의미에서 선진국 내에서도 여전히 통용되는 개념이다. 우리는 정치에서 ‘진보’라는 단어를 아직도 쓸 정도로,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좀 거리가 있다.

지난 대선과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서 정의당의 존재감은 슬플 정도로 없었다. 어려운 이유는 수없이 꼽을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과연 ‘정의’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소구력이 있는가를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좌파가 강렬할 정도로 정치색을 띤다고 하면, ‘정의’는 지나치게 탈색된 개념이다. 심지어 전두환도 민주정의당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진보정당이라는 표현이 주는 또 다른 딜레마는 민주당과의 차별성이다. 여론조사 등에서 민주당을 진보로 표현한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아닌 진보정당은 도대체 무엇이냐? 참 설명하기 어렵다. 결국 ‘진짜 진보’와 ‘가짜 진보’라는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대체 누가 이걸 구분할 수 있겠느냐?

선거에서 존재감이 사라진 듯한 정의당은 한때 원내교섭단체를 꿈꾸었던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지금 위기다. 노회찬의 꿈은 유럽에서는 중도 보수 정도 되는 사민주의 간판을 내거는 것이었다. 프랑스의 사회당, 독일의 노동당은 대표적인 사민주의 정당들이고, 온건 좌파 정도 된다. 재창당이 필요하다면, 이제 정의당이 진보 대신 사민주의 정당 정도의 입장으로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도시빈민의 일상 속으로 더 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하면 좋을 것 같다. 한국 자본주의는 문제 많은 시스템이지만, 이걸 더 고쳐서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데에 좌파가 기여할 바가 분명히 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왼쪽으로 가면 정의당도 충분한 역할이 있을 수 있다.

조국이 말했던 ‘진보집권플랜’ 혹은 김기식이 얘기했던 ‘빅텐트’, 그런 데에는 정의당의 자리가 없다.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 앞에서 민중들의 일상성에 대한 버팀막, 그건 시민단체가 잘못하는 일이다. 민주당은 검사들과 싸우면서 ‘진보’하는 동안 정의당은 플랫폼 노동 등 파편화된 노동의 고통과 도시 빈민의 피곤하고도 어려운 일상 속으로 걸어가는 좌파 노선을 걸어가면 좋겠다. ‘진짜 진보’ 혹은 ‘더 유능한 진보’, 이런 혁신 아닌 혁신으로는 더 갈 데가 없다. 이제 곧 4만달러를 넘어서는 한국 경제를 성장이냐 복지냐의 낡은 도식만으로 담아내기 어렵다. 자본주의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자세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의당, 더 돌아갈 우회로는 없다

정의당이 사민주의 정당으로 재창당하면 나는 당원도 가입하고, 특별 당비도 낼 생각이 있다. 이제는 솔직하게 대중들에게 “우리는 좌파 노선의 정치세력이다”라고 얘기할 때가 되었다. 자본주의가 진보하는 것인가? 자본주의는 수정하는 것이고, 변화시키는 것이고, 우리 시대에 맞게 고쳐 쓰는 것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진보에서 정의까지, 여기저기 돌고 돌았지만, 이제 정의당이 더 돌아갈 우회로는 없다.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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