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재정준칙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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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정부 재정준칙에 반대한다

by 경향 신문 2022. 9. 21.

세계경제가 벼랑 끝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물가상승 압력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폭주 탓이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각국 중앙은행은 코로나19로 짓눌린 경제를 구하고 물가하락 압력에 대응한다며 금리를 역사상 최저 수준에서 유지해 왔으니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당시 이른바 ‘장기 침체’가 초래한 저성장, 저물가, 저금리는 재정적자를 마다 않고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경제회복을 이끌어내기에 유리한 조건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와는 사뭇 달라 보인다. 혹시 기존의 장기 침체 추세가 멈춘 것일까? 코로나19와 글로벌 인플레이션 다음에는 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지난 4월 미국의 경제정책연구소(EPI)에서는 인플레이션이 해소되고 나면 세계경제는 다시 장기 침체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했다. 장기 침체의 구조적 요인은 변함없이 작동하고 있으며 인플레이션 요인이 사라져도 영향 받지 않는다는 결론이었다. 장기 침체의 재림은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나 경제학자 라구람 라잔에 의해서도 언급되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재정정책이 다시 무대 전면에 나서게 될 것이라는 진단이 이어진다. 포스트 코로나 국면의 재정 규율 회복 시도는 이와 같은 예측을 염두에 둘 일이다.

기실 저성장과 고물가를 배경으로 당분간은 실질금리(물가의 영향이 제거된 이자율)는 낮고 명목금리(실질금리에 물가상승률을 더한 것)는 높은 상황이 이어지기 쉽다. 그 경우 경제회복 속도가 빠를수록 국채를 활용한 적자지출의 이점이 커진다. 실제로 한국경제는 작년부터 경제성장률이 국채의 세후 실질금리를 3%포인트 이상 추세적으로 상회하는 중이다. 일각에서는 50%에도 못 미치는 현재의 국가채무비율이 높다고 아우성이지만, 경제논리만 따지면 한국은 나라가 빚을 더 내는 것이 여전히 합리적이다. 다만 물가상승 압력과 세입-세출 간 괴리를 고려하면 적자지출보다는 누진 증세로 무게중심을 옮겨가는 접근법이 나을 수 있다.

실상이 이럴진대 며칠 전 발표된 윤석열 정부 재정준칙은 문제가 너무 많다. 핵심은 관리수지 적자의 GDP 대비 비율을 3%까지 허용하되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어서면 동 비율을 2%로 낮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준칙은 우선 재정수지 정상화를 위한 증세 계획을 포함하지 않는 점부터 잘못 되었다. 강화된 준칙이 7월 세제 개편안의 부자 감세와 결합되면 결국 사회지출부터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를 거두기 어렵다. 게다가 준칙은 재정운영 기조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어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셈이다.

어디 그뿐인가. 준칙은 코로나19 후유증 극복, 불평등과 양극화 완화, 인구구조 변화 대응, 기후위기 대응, 산업 전환, 제조업 혁신 등 한국경제가 직면한 다양한 전환기적 과제에 대한 어떤 고민도 담고 있지 않다. 최소한 재정구조가 불안정한 전환기의 재정운영 틀은 장기적인 재정운영 틀과는 서로 다른 것이 되어야 할 텐데 준칙에는 그런 인식조차 없다. 따지고 보면 관리수지 기준으로 준칙을 정의한 것도 잘못이다. 현행 관리수지는 사회보험 가운데 적자 상태인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만 포함하고 있어 편제가 자의적이고 긴축 편향이 두드러진다. 관리수지 적자 3% 혹은 2%는 통합수지로는 균형 혹은 소폭 흑자에 가깝다. 실은 기계적인 균형재정을 강제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준칙은 2020년 국가재정법 개정안과 마찬가지로 이미 역사적 실패가 확인된 고릿적 유럽연합 재정준칙의 변형인 점에서도 한계가 뚜렷하다. 특히 재정준칙을 둘러싼 최근 연구 성과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다. 경제학자 올리비에 블랑샤의 대안적 논의에서는 고정된 숫자를 못 박는 기왕의 준칙은 이제 버리고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포괄적인 규범으로 대체하는 편이 좋겠다는 것과 미래 재정여건을 지속적으로 예상하고 점검하는 과정의 의의가 강조된다.

적어도 바람직한 재정준칙이라면 정부가 경제사정이 악화될 때 지출을 재량적으로 충분히 늘릴 수 있는 신축성을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실업수당이나 고용유지지원금처럼 경기변동에 따라 자동적으로 규모가 조절되는 항목들에 대해서는 준칙을 적용하지 않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준칙은 또한 미래를 위한 전략적 공공투자를 방해해서도 안 된다. 공공투자는 수혜자인 미래 세대가 비용을 분담하는 ‘응익원칙’의 황금률에 따라 국가채무를 활용하는 방식이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제안한 내용은 이 중 어떤 요건도 충족시키지 않는다. 오늘 필자가 정부 재정준칙에 반대하는 이유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 교수>

 

 

연재 | 경제직필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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