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나던 5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 개선사례를 발표했다. 지난해 6월 김상조 위원장 취임 이후 자발적 재벌개혁을 주문한 뒤 처음으로 집계한 성적표라 할 수 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연말까지 1차 시한을 줬고, 10곳이 개선계획을 내놨다. 현대차는 그동안 총수의 거수기란 비판을 받아온 사외이사를 주주들이 추천하는 인물로 선임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SK는 전자투표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LG는 지주회사 구조개선, 롯데는 순환출자 해소와 지주사 전환을 추진 중이다. 현대중공업, CJ, LS, 대림, 효성, 태광도 순환출자 해소, 지주회사 전환, 일감몰아주기 해소 계획을 밝혔다.

 

공정위는 대기업집단의 이런 노력을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대기업집단 중 여전히 다수가 개혁안을 내놓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제출한 개혁안도 최선이었는지 의문이다. 현대차는 최대 관심사인 순환출자 해소나 현대글로비스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지주회사 전환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대림이나 태광 등은 일감 몰아주기 근절을 약속했지만 공정위의 조사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생색내기 측면이 강하다.

 

재벌개혁의 상징인 삼성은 아예 개혁안을 내놓지 않았다. 삼성은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구조이다. 순환출자 해소나 금산분리 문제 등은 지배구조 개편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안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변명에 불과하다. 이 부회장의 구속상태가 지속됐다면 그냥 지나칠 생각이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재벌들이 누가 먼저 개혁 총대를 메는지 눈치만 보는 형국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정부의 재벌개혁 의지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셀프개혁으로 과거의 적폐를 바로잡을 수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 부회장의 2심 판결은 재벌 일가의 탈법 세습과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확인케 한다. 제1야당은 이 판결에 경의를 표한다며 환영했다. 과거 재벌개혁은 호기롭게 시작됐다가 로비와 버티기로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이번 국회에도 상법개정안 등 재벌의 적폐를 바로잡을 수 있는 법안이 다수 제출돼 있지만 재계에 경도된 야당의 반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속도와 강도를 높이지 않으면 옛 전철을 밟을 수 있다.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