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소득 불평등 해소 없으면 개혁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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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사설]소득 불평등 해소 없으면 개혁 아니다

by 경향 신문 2017. 1. 9.

덴마크에서 붙잡힌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는 값비싼 패딩 차림이었다. 그는 고가의 월세주택에 머물며 육아 도우미와 2명의 수행원을 곁에 두고 있었다. 체포된 뒤에는 현지의 대형 로펌 변호사를 고용했다. 한번도 돈을 벌어보지 않았지만 강원도 평창의 금싸라기땅 7만평 중 50%를 증여받고, 사실상 맞춤형 전형을 통해 대학에 입학했다. 수업에 출석하지 않고도 점수를 척척 받았다. 또래의 젊은이들이 정씨의 모습에 막막해하는 것은 단순히 흙수저로 태어난 게 억울해서가 아닐 것이다. 밤새 공부해 진학하고, 꾸역꾸역 아르바이트로 대학을 마치더라도 계층이동이 이뤄질 사다리가 없다는 절망감이 더 크다. 나아질 것이라는 설렘과 기대감으로 시작한 새해 소망은 애초부터 배신당했다.

 

촛불은 박근혜·최순실의 헌정 농단에 대한 분노가 직접적인 계기지만 그 이면에는 소득 불평등에 대한 시민들의 절망과 답답함이 녹아 있다. 한국 상위 10%의 소득점유율은 45%로 아시아 최대다. 최상위층 1%의 부는 전체 부의 18%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다. 사회적 기회는 기득권이 독식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완전히 엮였다’고 말했지만 박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은밀히 불러 자금지원을 요청하며 그 대가로 승계를 정당화시켜주는 청와대-국민연금-삼성 간 연결고리로 특검의 수사를 받고 있다. 조만간 권력과 짬짜미한 부의 세습 과정이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이 부회장은 아버지로부터 증여받은 60억원을 종잣돈으로 8조원대의 자산가가 됐다. 최상위 포식자 세습 자본을 위해 세습 권력마저 이권 도우미로 전락했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기득권은 늘 경제가 성장하고 대기업이 잘되면 낙수효과가 있을 것이고, 자유시장이 성장을 위한 최상의 수단이라고 말해왔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무산된다면, 국가적·경제적 손해라는 생각으로, 국민연금이 잘 대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는 박 대통령 발언에는 대기업중심 체제에 대한 맹목적 신념이 자리한다.

 

지난 4년간 지속된 규제완화, 감세, 노동 유연화가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그 덕분에 부자들의 부는 더 늘었고, 다수의 시민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부를 대물림하지 못한 시민들은 힘겨움을 각오해야 한다. 안전망이 취약해 빈곤의 덫에 걸리면 회생은 불가능하다. 노인빈곤율, 남녀임금격차, 저임금 노동자 비율 세계 1, 2위는 이런 결과이다. 이익은 자본가가 갖고, 손실은 시민에게 전가되는 사회에서 참고 지내면 나아질 것이란 기대는 무망하다.

 

소득 불평등이 심각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무의미해졌다. 불평등은 활화산이 돼 금방이라도 폭발할 기세다. 기우뚱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인류 역사에 완전한 평등은 없었다는 말이 불평등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왜 부자는 그처럼 많은 자산을 갖게 됐는지, 세금은 합리적으로 걷히며 쓰이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불평등 완화를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수단에는 세금을 통한 재분배와 복지정책이 있다. 물론 그동안에도 개선 노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것은 정책이 실패했다는 뜻이다. 실제 종합부동산세나 법인세 인상 같은 조치는 기득권의 거부로 사라졌다. 법과 제도 속에서 더 많은 이익을 향유하는 사람이 세금을 더 내도록 해 소득의 재분배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치권에서 다시 복지예산 확대와 증세 얘기가 분출한다. 보수진영에서조차 법인세와 부동산보유세 인상론이 나온다. 당연한 귀결이다. 다만 한계는 있다.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 예산비중이 낮고, 기초적 복지제도도 작동되지 않아 나랏돈을 더 쏟아부어야 하지만 이를 단기간에 크게 늘리기는 어렵다. 이는 세금만으로는 불평등 해소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런 측면에서 시민들의 소득을 늘려주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소득 불평등은 가진 것보다 버는 것의 차이에서 기인한 측면이 훨씬 크다. 노동소득이 전체소득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다수의 시민들은 임금으로 삶을 꾸려간다. 하지만 노동시장은 정규직 대 비정규직, 대기업 대 중소기업으로 이중적이다. 정부 통계만으로도 임금노동자 중 3분의 1인 630만명이 비정규직이다. 대기업 노동자는 전체의 4% 수준이고 중소기업 노동자가 다수이다. 임금 차이는 확연하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절반, 중소기업 노동자는 대기업의 60% 수준이다. 3, 4차 하청업체로 내려가면 차이는 더 벌어진다. 청년들이 ‘월급 많이 주는 정규직’이 꿈이라는 얘기는 저임금 비정규직을 벗어나기 힘든 불평등의 아픔을 얘기하는 것이다.

 

대기업의 이득을 하청업체와 나누는 노력, 중소기업의 노동조합 활성화,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 절실하다. 기본소득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핀란드에서 시도된 기본소득 도입은 아직은 실험 수준이지만 노동자의 삶을 구하고 불평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명제의 절실함을 드러낸다. 미국에서조차 기업 경영자가 스스로 연봉을 낮추고, 직원연봉을 대폭 올려주는 일이 잦다. 이 모두 시민들에게 희망을 준다. 다가올 대통령 선거는 불평등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절호의 무대이다.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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