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영국서 벌어지는 초현실주의 희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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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영국서 벌어지는 초현실주의 희비극

by 경향 신문 2022. 9. 30.



인플레이션이 생기고, 금리가 올라가고, 주가가 떨어지고, 경기 침체가 나타나곤 하는 일련의 과정은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났던 일이다. 이번에 직면하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1980년대 초 이후 40여년 만에 나타난 현상이라는 점에서 분명 독특한 측면이 있으나 본질은 일반적인 사이클과 다르지 않다. 이번에도 경기 침체는 꽤 높은 확률로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는 긴축정책은 경기후퇴를 예비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금리를 올려 경제의 과잉수요를 억제함으로써 물가 안정을 도모하는 정책이 긴축이기 때문이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주가 폭락은 경기 침체에 대한 선행적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경기 둔화의 양상이 완만한 연착륙일지, 아니면 치명적인 경착륙일지가 중요한데, 시스템 리스크의 발생 여부가 그 길을 결정한다. 시스템 리스크는 ‘거래 상대방 위험’에서 비롯된 ‘금융 시스템의 경색’ 또는 ‘신용 위험’을 의미한다. 특정한 경제 주체가 파산하거나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면서 금융기관, 특히 은행이 타격을 입게 되면 대출이 중단되고, 오히려 빌려준 자금을 회수하게 된다. 돈이 돌지 않는 금융시장의 경색은 실물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줘 경기 침체의 골을 깊게 하는데, 금융이 매개가 된 이런 일련의 과정이 시스템 리스크이다.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하면 경착륙을 피하기 어렵다.

신흥국의 위기는 당사국에는 심각한 타격을 주지만, 글로벌 경제 전반적으로는 미풍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신용위험은 곧바로 글로벌 리스크로 확대된다. 2007~2008년 미국의 부동산 부실에서 촉발됐던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형적인 사례이다. 당시 한국 주식시장의 KOSPI는 2064포인트에서 938포인트까지 54%나 급락했다. 당시 한국 경제에 주가지수의 소위 반토막이 정당화될 정도의 심각한 모순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미국 금융시장에서 난 불이 한국으로 옮겨붙었을 따름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는 주가뿐만 아니라 실물경제도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후퇴를 나타냈다. 2010~2012년 유로존 재정위기 때도 한국 경제와 증시는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은 바 있다.

선진국 금융위기 전 세계로 확산

신흥국의 신용위기가 국지적 리스크에 그치는 반면, 선진국의 신용위기는 글로벌 리스크로 전이됐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본다. 신용위기가 발생했을 때 부실의 금액이 선진국에서 압도적으로 컸다는 점이 첫 번째 이유이고, 구미 선진국 금융기관들이 금융세계화를 주도했다는 점이 두 번째 이유이다. 금융세계화의 진전으로 전 세계 금융시장의 연결은 강화됐는데, 이를 주도했던 선진국 금융기관들이 타격을 받게 되면 전 세계에 뿌려져 있는 유동성 흐름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대출금의 회수, 주식·채권 등의 매도를 통한 투자자금의 회수 등이 나타나면서 선진국의 신용위기는 전 세계로 확산되곤 한다.

향후 경기 침체의 깊이와 주가의 추가 조정 강도도 신용위험의 발생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본다. 내부적으로는 가계부채와 주택시장 동향이 시스템 리스크 발생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 외부적으로는 선진국에서의 시스템 리스크 발생 여부가 중요하다.

지난주 이후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동은 선진국이 직면해 있는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전 출범한 보수당의 트러스 내각은 감세 정책을 발표했다.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민간의 활력을 통해 성장하겠다는 보수 정파의 전형적인 시각을 드러냈지만,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었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감세는 간접적으로 재정을 통한 경기 부양 효과가 있어 인플레이션을 더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 감세 정책이 물가 불안을 깊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투영되면서 영국의 국채 길트 10년물 금리는 6거래일 만에 1%포인트 넘게 급등(3.48%→ 4.54%)했다.

금리가 급상승하니 영국의 연금 펀드들에서 난리가 났다. 금리가 급등(채권 가격 급락)하면서 연기금들이 보유한 파생금융상품 계약에서 담보로 제공한 국채의 가치가 급락했다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추가적인 현금을 투입해 담보를 맞춰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보유 중인 자산을 팔아야 한다. 그렇지만 보유 중인 채권을 팔면 이런 행위가 금리를 상승(채권 가격 하락)케 해 자신들이 처한 어려움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는 딜레마가 존재하고, 주식 등을 팔더라도 해당 자산시장 하강의 골을 깊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강력 긴축이 더 큰 비용 부를 수도

이번주 초 런던의 금융 중심지 ‘더 시티’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 나타났던 미국 ‘월스트리트’의 대혼란이 재연될 수도 있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어쩔 수 없이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나섰다. 3주 동안의 일시적 조치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국채매수를 통한 양적완화를 재개하면서 다시 돈을 풀었다. 영란은행의 조치 이후 영국 국채 금리는 급락했고, 글로벌 주식시장은 강하게 반등했다. 

단기적으로는 희극이지만, 큰 그림에서는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강력한 긴축과 금융시장 경색을 막기 위한 돈 풀기가 공존하는 초현실주의적 광경이기 때문이다. 영란은행의 이번 조치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강화시켜 종국에는 더 큰 비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다분히 크다.

금리 급등이 가져올 금융시스템 교란 요인이 영국에만 존재할 것 같지는 않다. 이번에도 역시 복잡한 금융 파생상품이 문제이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중앙은행의 긴축이 시스템 리스크 발생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 인플레이션은 해악이지만, 시스템 리스크와 실물 경기 경착륙을 감내하고서라도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정당화될 수도 없다. 영란은행을 보면서 이번 긴축 국면에서 인플레이션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적당히 높은 물가를 감내하면서 금리의 지속 상승이 아닌, 적당히 높은 금리가 공존하는 정도의 모습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 아닐까 싶다. 물론 적당히 높은 금리도 초저금리에 익숙한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은 긴축지향적 금리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연재 |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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