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고상한 자본주의, 미몽으로 끝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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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고상한 자본주의, 미몽으로 끝나는가

by 경향 신문 2022. 8. 26.
 


이기적 동기와 결과로서의 높은 효율은 자본주의의 미덕으로 칭송돼 왔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 쓴 그 유명한 문장처럼 말이다. ‘우리가 매일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그들의 계산 때문이다.’  

지난 수년간 기업 활동과 금융시장에서 나타났던 중요한 흐름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은 이와는 결이 다른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 결과로서의 효율뿐만 아니라 결과를 만드는 행동도 규범적으로 혹은 아름답게 하자는 취지가 그것이다. 아름답게 행동하면 결과가 더 좋았다는 주장도 있지만 보편성을 가진 공리로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ESG를 준거의 틀로 삼았던 행동과 결과의 경험치가 충분히 쌓여 있지 않아 판단을 내릴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

필자는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한 자본주의의 새로운 프로젝트로 ESG를 이해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진행되고 있는 뚜렷한 경향은 정부의 역할 증대이다. 정부가 어느 정도까지 경제에 개입해야 하는가는 경제적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오래된 논쟁거리지만, 금융위기 이후 정부와 중앙은행 등 공적 플레이어의 역할이 커졌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대부분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민간 영역의 성장 둔화를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엄호를 받은 정부의 재정지출로 메워나가고 있다. 독일과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지출 비율은 기조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정부부채 증가는 재정지출 확대의 그림자이다. 한국도 비슷한데, 2015년부터 재정의 성장 기여도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만 GDP 대비 정부지출 비율이 하락하고 있다. 미국의 성장은 민간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데, 이는 소위 4차 산업혁명의 헤게모니를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잡고 있기에 가능하다. 그렇지만 미국 성장률의 절대치가 높은 것은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GDP 성장률(2008~2021년)은 연평균 1.6%에 불과하다. 유로존(0.6%)과 일본(0.2%)보다는 훨씬 높지만, 미국의 과거 시기와 비교해 보면 대공황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의 파급력이 과거의 기술 혁신보다 훨씬 약하다는 데 기인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특정한 발명품이 존재하지 않는다. 1차 산업혁명은 동력을 발명했고, 2차 산업혁명과 3차 산업혁명도 각각 전기와 PC·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혁신의 매개체를 만들어냈다. 4차 산업혁명은 기존 기술의 융합이다. 4차 산업혁명이 인류의 삶을 효율적으로 바꾼 것은 사실이지만, 새로운 파이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4차 산업혁명에서 파생된 혁신은 기존의 비효율을 대체하면서 부각됐다. 빅데이터로 무장한 아마존의 성장은 기존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의 몰락과 함께 나타났고, 한국의 혁신적 운송서비스였던 ‘타다’의 출현은 기존 택시 사업자들과의 마찰로 귀결됐다.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파이의 창출이 아니라 기존 파이의 새로운 배분에 그치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지만, 경제 전반의 성장을 확대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새 프로젝트 ESG에 부는 역풍

민간에서 만들어내는 파이가 작으니 정부라도 나서야 하는데, 우리 시대 자본주의의 딜레마는 마땅히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도시화가 충분히 진행돼 인프라 투자를 늘리기 어렵다. 논란의 주제인 기본소득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낮은 확장성과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기 힘든 공공지출의 한계가 함께 작용하면서 사회적 의제로 부각됐다고 볼 수 있다. 기술 진보와 공공사업 모두 마땅한 일자리를 만들기 어려우니 개별 경제주체에 대한 직접 지원이라는 아이디어가 대두된 것이다. 

정부는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플레이어가 아니다. 정부의 경제활동에는 명분이 필요하다. ESG는 누군가에겐 도덕적 각성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민간의 활력 저하와 정부의 영향력 확대의 부산물이기도 하다. ESG는 금융시장에서 기업을 평가하는 잣대로 활용되기도 하는데, 이런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각국의 공적 연기금들이다.

다만 최근에는 ESG에 대한 역풍이 감지되고 있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상징되는 ‘분열된 세계’는 ESG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ESG의 첫머리인 환경(Environment) 분야는 지정학적 갈등이 양 날의 칼로 작용할 것이다. 지정학적 긴장에 따른 화석연료 가격 상승과 자원의 무기화는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화석연료 사용 확대로 나타날 수도 있다. 유럽의 친환경 흐름을 주도했던 독일에서의 석탄 사용 확대, 미국의 셰일오일 증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에너지난이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탄소중립은 사치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다른 한편의 음험한 상상으로는 지정학적 긴장과 글로벌 밸류체인 재편이 새로운 성장의 동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전쟁은 누군가에겐 큰 기회였다. 대공황의 극복은 뉴딜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으로 가능했다. 또한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을 통해 패권국으로 등극했고, 달러는 기축통화로 자리 잡았다. 한국전쟁은 일본에 경제적 도약과 함께 전범국가에서 미국의 반공 파트너로 바뀌는 신분세탁의 기회가 됐고, 베트남전 참전은 한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됐다. 자기 땅에서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파괴는 누군가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

ESG 확산에 제동 걸릴 가능성

주식시장의 전반적인 약세 속에서도 미국의 방위산업 기업인 제너럴 다이내믹스와 노스룩 그루만의 주가는 약진하고 있다. 정치적 요인에 의해 나타나고 있는 생산망 재편도 글로벌 경제 전반적으로는 비효율을 초래하겠지만, 새로운 투자를 불러오는 요인이기도 하다.

어쩌면 자본주의는 ESG라는 규범보다는 기존 질서의 파괴를 통해 활로를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격렬한 갈등이 나타나고 있는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 고상한 자본주의가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ESG에 부는 역풍이 미풍일지, 태풍일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ESG의 확산에는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연재 |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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