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자는 누가 감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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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감시자는 누가 감시할 것인가

by 경향 신문 2022. 8. 29.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책을 쓸 준비를 하던 시절, 교육방송의 ‘장학퀴즈’용 문제를 만드는 알바를 했다. 경제와 환경에 대한 문제들을 주로 냈다. 그러다 영화 <퀴즈쇼>를 보게 되었다. 영화는 NBC 방송국에서 1958년 발생한 퀴즈 스캔들을 다루고 있다. 연승을 하던 젊은 컬럼비아 대학의 찰스 반 도렌은 사실 방송국으로부터 질문을 미리 받았다. 이 사건을 파헤쳐서 결국 부정을 저지른 방송국과 출연진을 잡아낸 조사관인 리처드 굿윈은 나중에 케네디의 연설 담당관이 된다. 미국을 뒤흔든 이 스캔들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내가 놀랐던 것은 그게 감사원이나 정보기관이 아니라 미국 국회 소속 조사관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국회가? 미국에서는 감사원, 정확히는 회계감사원이 국회 소속이라는 것을 영화를 보고 나서야 처음 알았다. 국가별로 감사원의 법률적 위상이 조금씩 다른데, 영국·미국이 국회 소속이고, 프랑스는 별도의 독립 기관이다. 한국은 헌법상 대통령 산하로 감사원이 설치되어 있다.

감사원, 정권 교체 후 보복자 역할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당대표가 문재인이던 시절,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하면서 온갖 종류의 개혁안에 관여하게 되었다. 그때 감사원 개혁 문제도 다루었는데, 이때 많은 사람들이 그건 손대지 말라고 나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민주연구원이나 여의도연구원 같은 정당 싱크탱크들도 국고보조금을 받고 있어서 언제든 감사원에서 자금 집행 같은 것을 챙겨보자면 챙겨볼 수 있다. 한국의 정당 역시 자금 운영과 관련된 오래된 관행과 편법 같은 게 있어서 완전히 투명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평소에는 바른 소리 잘하던 정부 연구원에 소속된 연구진도 감사원 문제는 자신들이 얘기하기 어렵다고 했다. 오죽하면 감사한다고 하니까 경제 연구소 중의 경제 연구소인 KDI 원장이 결국 사직서를 제출했겠는가? 감사원을 두려워하는 것은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학회장을 몇 번씩이나 한 어느 원로 교수가 “몇 년 전에 먹은 점심값 영수증까지 다 챙겨오라고 한다니까, 그건 그냥 접으시게”, 나에게 이렇게 조언해주었다. 무서운 게 아니라 귀찮은 건지도 모르겠다. 감사원도 일단 떴다고 하면, 자기들도 명분이 필요하니까 뭐라도 뒤져낸다. 검사 개혁과 비교하면 감사원 개혁에 대한 논의가 별로 없는 건, 전문가들조차 검사보다 감사원이 더 무서워서 그런 것 아닐까?

헌법과 법률이 잘 지켜진다면 감사원은 행정부에 있어도 되고, 입법부에 있어도 된다. 잘 운영되고 모두가 만족하면, 그걸로 된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한국의 상황은 그렇지가 않다. 행정부가 제대로 운영되는지 감시하라는 ‘감시자’가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의 정책을 보복 감사하는 ‘보복자’의 모습에 더욱 가깝다. 이쯤에서 오래된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 이 사회과학 질문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늘 감사원이 문제가 되니까, 미국처럼 소속 기관을 국회로 바꾸는 게 한국적 대통령제에서는 정답이다. 그렇지만 이건 개헌 상황이라서 당장 시행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정책 감시자의 정치적 폭주를 그냥 방관하는 것도 좀 그렇다. 헌법은 그대로 두고 감사원법의 일부를 개정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미국처럼 국회 소속되는 게 맞아

우선은 시민들이 감사원 운영에 좀 더 관여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폐쇄적 행정 기관의 운영을 투명하게 하기 위해서 종종 사용되는 ‘옴부즈맨’을 도입하는 것이 가장 손쉽다. 모두에게 과정을 공개하지는 않더라도 선출된 시민들에게 감시자의 감시 역할을 맡기는 것은 이제 우리에게도 상당히 익숙한 제도가 되었다. 감사원장과 감사위원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 시민이 참여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검토할 사안이다.

여기에 더하여 국회의 감시를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만들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지금도 법제사법위원회가 감사원 업무를 다루기는 한다. 그렇지만 너무 피상적이고, 제한적이다. 이걸 좀 더 키워서 국회에서 감사위원회 운영을 별도로 다루는 기구를 만들고, 여기에 최소 분기에 한 번 감사업무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할 수도 있다. 여야 합의로 이런 기구 인원을 구성하면, 좀 더 전문적으로 감사의 적절성과 타당성 혹은 효율성 같은 성과평가를 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한국의 감사원은 미국처럼 국회 소속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이전이라도 감사원법을 통해서 ‘감시자의 감시자’를 제도화시킬 수 있다. 행정과 독립적으로 작동해야 할 감사원이 지금처럼 감시자가 아니라 ‘보복자’의 역할을 하는 것은 파행적이다. 그건 누가 집권해도 마찬가지다. 해야 할 감사는 잘 모른다고 안 하고, 하지 않아도 될 감사를 보복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지금의 감사원을 그냥 방치하면 안 된다.

 


<우석훈 경제학자>

 

 

 

연재 | 우석훈의 경제수다방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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