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기본소득보다 더 좋은 일자리 만드는 ‘정치적 기획’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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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기고]기본소득보다 더 좋은 일자리 만드는 ‘정치적 기획’ 시급

by 경향 신문 2020. 7. 3.

코로나19가 초래할 대규모 경기침체와 고용위기 전망으로 기본소득이 정치권의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기본소득 논의의 배경은 디지털 혹은 플랫폼 자본주의가 불러올 우울한 고용전망에서 출발한다. 빅데이터, AI 등으로 압축되는 디지털 기술은 현대판 러다이트로 비유되고, 고용과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계층에게 기본소득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에 따른 대량해고는 아직 통계적으로 입증된 바 없고, 불길한 미래의 전망은 과도한 상상력에 의존한다. 물론 디지털 기술의 도입에 따라 저숙련 일자리가 빠르게 증가하지만, 양질의 일자리도 생겨나고 있으며 오히려 ‘손노동’의 중요성이 다시 강조되기도 한다.

 

문제는 기술발전에 대한 공포와 선입견으로 양질의 일자리 만들기를 포기하고, 나쁜 일자리만 보호하려는 정치의 무능이다. 일자리의 보호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러나 플랫폼 노동에 종사하는 청년들이 30년 뒤에도 같은 일을 계속하리라는 전망은 더 서늘하다. 그런 면에서 정부가 기획하는 ‘디지털 뉴딜’이 가져올 환상을 경계하고,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정치적 기획이 시급하다.

 

증세·탄소세·로봇세 3종 세트의 마법만 있으면 기본소득이 실현될 수 있다고들 한다. 이는 기본소득이 아니라도 불평등 해소와 기후·환경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반면 좋은 일자리는 아무 일자리를 늘린다고 되지 않는다. 20세기 초 자본가들이 농민을 ‘조련된 고릴라’ 수준의 노동자로 만들었지만, 그러한 단순반복적 일로부터 노동의 인간화를 구축한 것은 진보의 정치였다. 노동자의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 공공의 일자리와 복지제도를 구축한 것도 정치의 역할이었다. 신자유주의 시절엔 그런 노력도 시들해져서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라도 만들겠다더니 디지털 자본주의 아래서 정치는 좋은 일자리 만들기를 아예 포기하고, 기본소득이라는 낮은 수준의 분배정책만 앞세우기 시작한다. 디지털 자본주의 아래서 신규 일자리 발생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사실 진짜 이유는 국내외적으로 노동과 자본 간 힘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고, 정치가 이를 견인할 의지도, 비전도 없지만, 정치효과는 좋기 때문이다.

 

지금 정치는 미래세대를 위한 ‘좋은 일자리’ 창출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정부는 비정규 노동의 정규직화라도 신경을 쓰지만, 노조는 고용유지라는 조직화된 중고령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기 바쁘고, 자본은 디지털 전환을 통해 노조 없는 ‘비정규 천국’을 만드는 데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로봇화, 자동화 비율이 전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가? 남는 것은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전 국민에게 각종 수당을 얹어 주는 일뿐이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일까?

 

재정투입은 필요하다. 그러나 재정투입만이 케인스주의의 요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신자유주의 시절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영미에서 시도된 인위적 산업 구조조정은 엄청난 실업자를 양산했고, 이들에게 지불되는 실업급여는 복지비용을 천문학적으로 늘렸다. 복지의 역설이다. 그래서 케인스주의자 조앤 로빈슨은 이를 가리켜 ‘사생아 케인스주의’라고 명명한 바 있다. 재정투입만이 목적이 되면 안 되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재정의 효율적 투자가 필요하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헬리콥터 머니를 살포하고도 비정규직을 양산한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미래 일자리에 대한 비전과 직업훈련을 통한 ‘좋은 일자리’ 만들기에 대한 정치적 기획과 노력이 더욱 시급하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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