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국에서 연구년 중이다. 지난 토요일 저녁, CNN 방송을 보는데 뉴스는 안 하고, 영화가 방영되었다. 누군가의 전기 영화. 영화 <데드풀2>와 <SNL>에서 언급된 사람, 학교 졸업 후 면접 갔다 떨어진 직장에서 25년 넘게 근속한 사람, 행여 건강상 이유로 입원이라도 하면 뭇 언론과 많은 국민들이 그의 건강상태를 주목하는 사람. 누구일까? 긴즈버그 연방 대법관이다. 정확히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긴즈버그 대법관을 묘사하는 단어는 많다. 암에 걸린 남편과 자식 수발하면서 컬럼비아 법대를 수석졸업(입학은 하버드 법대)하고, 오직 여자라는 이유로 연방대법원 서기직 면접에서 탈락한 사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1993년부터 연방대법관으로 근무하기 시작하여 25년간 여권 신장과 약자 보호에 헌신한 사람. 자신이 죽으면 미국 공화당이 보수 편향 대법관을 임명할 것을 염려해서 죽지 않으려고 운동하는 사람(일명 ‘플랭크 자세 취하는 할머니’). 건강 악화로 쓰러질 때마다 “버티세요, 긴즈버그. 우리는 아직도 당신이 필요해요(Hang in there, Ruth. We need you.)”라며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쾌유를 기원하는 사람. 여권 신장을 위해 미국 인권 단체인 ACLU 내에 여권 신장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수많은 연방대법원 판례를 이끌어 낸 사람. 연방대법관이 되어서는 하도 소수의견을 많이 내서 팝뮤직 그룹인 The Notorious B.I.G.를 패러디하여 The Notorious R B G로 불리는 사람. 그의 이름을 딴 머그잔과 티셔츠가 제작되고 어떤 사람은 그의 소수의견을 가져다가 노래 가사를 만들고, 어떤 사람은 아예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던 사람.

 

일러스트_김상민 화백

 

CNN이 방영한 영화가 바로 그 영화였다. 그 안에는 기존 질서에 저항하면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근대 시민사회의 명제를 현실에서 구현하려고 노력한 한 사람의 일대기가 잘 나타나 있었다.

 

지난겨울, 우리나라 국민들이 사랑했던 영화는 <보헤미안 랩소디>였다. 그런데 1970년대의 영국에 두 명의 퀸이 있었다면, 미국에는 긴즈버그가 있었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만들어지던 무렵(그리고 우리나라 권위주의 정부가 이를 금지곡으로 분류할 무렵), 미국에서는 수많은 대표적 민권 판례들이 정립되고 있었다. 긴즈버그는 이 시기에 민권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여권 신장 및 양성평등과 관련하여 총 6건의 사례를 엄선하여 미국 연방대법원에 전략적으로 제기했고, 그중 5번을 승소했다. 프레디 머큐리는 동성애자임을 숨겨야 했지만,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은 미국 연방대법원이 게이를 차별하는 법을 위헌으로 판결한 뒤 2개월 만에, 두 남성 간 동성 결혼의 주례를 섰다. 왜 많은 미국 국민들이 긴즈버그를 그토록 애지중지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대법관은 어떠한가? 건강상의 문제를 겪는다고 했을 때 많은 국민들이 진심으로 쾌유를 기원하는 그런 대법관이 우리에게 있는가? 건강상의 쾌유는 차치하고 1만명 이상의 비법조인들이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는 대법관이 있기나 한 것일까? ‘김영란법’을 제안한 김영란 전 대법관이 있기는 하지만, 김영란법의 상징을 걷어내고도 국민들이 그 이름을 기억했을지는 미지수다.

 

김 전 대법관을 제외할 경우 국민들이 기억하는 대법관이 한 명 더 있기는 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그러나 그 ‘기억’의 수준과 내용은 천양지차다. 양승태는 일국의 대법원장이었지만, 재판을 하는 판사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재판거래 의혹의 주범이다. 긴즈버그는 대법원장은 아니지만 많은 국민들이 그 이름을 존경과 친밀감의 대상으로 기억한다.

 

지난 15일 제3차 검찰조서 열람을 위해 대중 앞에 모습을 나타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맞이한 것은 국민들의 존경과 친밀감이 아니라 전 국민의 3분의 2가 ‘그의 구속이 마땅하다’고 응답했다는 싸늘한 여론조사였다. 이런 와중에도 그는 자신의 죄를 솔직히 시인하고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명색이 일국 사법부의 수장이었는데, 어찌 문제의식이 그것밖에 안되고, 처신이 이토록 초라한가. 보수와 진보라는 가치는 사람마다 자신의 철학에 맞게 가지는 것이고, 당연히 다를 수 있다.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도 보수의 아이콘이라는 스칼리아 대법관과 진보의 아이콘인 긴즈버그 대법관은 서로 절친한 사이였다. 우리는 법관에게 가치관이 동일할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그 가치관이 본인의 양심에서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함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15일 검찰에 출두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모습은 그저 자신의 안위에 연연하는 필부의 모습일 뿐이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국가가 법관에게 부여한 엄청난 재량을 또 다른 목표를 위해 남용한 데 대해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 점에 대해 검찰이나 법원은 추호의 망설임도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번 사법농단 사태를 단지 대법원장, 또는 법원 행정처장의 개인적 부정으로만 재단해서는 안된다. 더 큰 문제는 구조적 문제다. 구조적 문제 중 하나는 왜 수많은 다양성을 지녔을 수 있는 판사사회에서 양승태나 임종헌 같은 판사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왜 판사다운 판사도 있고, 필부도 있었을 터인데 유독 필부들이 그 시스템 내에서 ‘선택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질문의 해답은 ‘왜 상급자가 재판 담당 판사에게 얘기했다고 최종 판결이 그 말에 영향을 받는 구조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의 해답과 동일하다. 결국 법관 인사 시스템이 구조적으로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도록 되어 있지,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 재판하도록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것은 책에만 쓰여 있는 말이다. 적어도 많은 국민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우리나라의 재판은 상급자의 지시와 로펌의 로비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국민들은 믿는다. 이번 사법농단 사태의 진정한 해결은 바로 이런 인식을 근본적이고 실질적으로 불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법관 인사 시스템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양승태와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한 사법처리다. 이번 주말을 지켜보자.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