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자 경향신문은 2009년 내내 총력을 기울여 특집을 했고 2010년 초에 <세계금융위기 이후(신자유주의를 딛고 다른 사회를 상상하다)>라는 책을 펴냈다. 벌써 10년이 흘렀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딛고 넘어서야 했을 신자유주의, 금융의 지배는 여전하고 ‘다른 사회’는 오지 않았다. 그때 내가 기고한 글의 제목이 ‘역사로서의 현재’(폴 스위지)였다.

 

1989년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1992년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역사의 종언”을 선언했다. 미국은 유일패권 국가가 되었고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완전한 승리로 앞으로의 역사는 별 의미가 없을 거라는 얘기다. 주류경제학과 국제기구는 단숨에 자본주의를 도입하면 구사회주의 국가들도 승리의 과실을 맛볼 것이라며 충격요법(가격자유화, 사유화, 개방)을 처방했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10여년의 이행불황을 겪었고 21세기 들어서야 회복을 시작했다. 이들의 회생만 기다리던 경제학자들은 또 한번 쇼크요법의 승리를 선언했지만 EU에 합류한 모범 국가들마저 1인당 GDP가 여전히 1만달러 부근에 머물러 있고, 폴란드에서는 극우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섰으며 러시아는 주변국가들을 군사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2008년 이후의 10년 동안 세계는 양극 질서 쪽으로 재편되고 있다. 미국이 버블 붕괴의 수렁에서 헤매는 동안 세계 경제를 이끌어 간 나라는 중국이었다. 2013년경 중국의 구매력 평가 GDP는 미국을 넘어섰고 군사비 지출도 비약적으로 증가했으며 석사 이상의 과학기술 인력배출도 미국과 유럽의 수치를 능가하게 되었다. 미국은 1980년대 후반 ‘최고 일본(Japan as NO1)’을 무릎 꿇렸던 통상압력을 중국에 가하기 시작했다.

2016년 신자유주의의 종주국에서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이라는 상징적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세계는 1년 넘게 트럼프발 통상전쟁을 치르고 있다. 전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비자유주의적 헤게모니(illiberal hegemony)로 치닫고 국가주의, 인종주의의 포퓰리즘이 국내 정치를 뒤흔들고 있다.

 

2018년 중반부터 국제기구들은 세계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끌어내리고 있으며 2008년의 점쟁이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2020년의 위기를 예고했다. 2018년 12월1일, 트럼프와 시진핑 두 정상은 가까스로 휴전을 선언했고 영국과 EU 간의 브렉시트 협상은 아직도 미로를 헤매고 있다. 미국의 중앙은행은 풀린 돈을 회수하기 위해 지난 2년 동안 9번에 걸쳐 0.25%씩 연방금리를 끌어올렸다. 시중의 장단기 금리 격차가 점점 좁아지는 건 미래가 불확실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중국은행은 새해가 밝자마자 지불준비율을 1% 인하함으로써 약 200조원의 추가 대출을 가능하도록 했다. 달러 표시 1인당 GDP가 여전히 1만달러를 넘지 못하고 각종 불평등이 극에 달한 중국에서 공산당 독재의 정당성은 여전히 6%대 이상의 경제성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여 금년 전반기 세계 경제의 향방을 결정할 미·중 통상협상은 중국의 상당한 양보로 막을 내릴 것이다. 지난 경향 칼럼(‘트럼프 사용설명서’ ‘한반도의 촛불’)에서 밝혔듯이 이 게임은 트럼프 대통령이 호기롭게 “역사적 승리”를 선언하는 데 필요한 양보의 최소치를 빨리 찾아내야 결국 승리할 수 있다. 이렇게라도 경제위기를 막을 수 있다면 시간은 중국 편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미·중 간의 무역협상이 벌어지는 동안 북·중 정상회담이 베이징에서 열렸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집권 1기 5년 동안 한번도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지 않았던 걸 상기하면 북·중관계는 밀월시대에 접어든 셈이다. 자세한 회담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곧 열릴 예정인 북·미 정상회담이 핵심 의제였을 것이다.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모든 이가 미·중 통상협상과 북·미 핵협상은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에선 두 협상이 확고하게 연결되어 있다. 둘 다 그의 재선을 위해 필수적인 “위대한 승리”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한국과 함께 북한체제의 국제적 안전보장책을 만들어내고 트럼프에게 필요한 경제적 양보를 제안한다면 모두 만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12년 후쿠야마 교수는 ‘역사의 미래’라는 글을 썼다. 역사는 끝난 게 아니라 미래로 향하고 있다. 그는 중산층의 해체가 민주주의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면서, 짐짓 좌파의 비전 부재를 한탄했지만 그 현상의 원인인 신자유주의가 해법이 아님은 더욱 확실하다. 이렇듯 세계는 30년 전과 10년 전의 역사적 대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채 가보지 않은 길을 헤매고 있다. 아직도 살아 남았다는 이유로 시장만능의 경제정책(‘경제활성화’)이나 과학혁명의 신기루(‘혁신경제’)를 글로벌 스탠더드라면서 무턱대고 뒤쫓아서는 안된다는 사실만 확실하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불평등 해소를 위한 여정은 ‘창조적 파괴’를 기다리고 있으며 이것이 ‘역사로서의 현재’가 가리키는 우리의 현주소이다.

 

<정태인 | 독립연구자·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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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