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그 오묘한 세계에 대해 논하기가 쉽지 않다. 워낙 복잡미묘해서 그렇다. 저자로서, 처음으로 쓴 책이 음식에 관한 책이었다. 따져보면, 내가 음식으로 저자 데뷔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맛은 워낙 어려워서 지금도 감히 말을 하기가 무섭다. 맛집은 잘 몰라도, 맛은 조금 안다고 생각한다. 결혼하고 몇 년 동안 우리 집 밥은 내가 했다. 돈 못 버는 남편이, 밥이라도 짓고 반찬이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식구들 먹을 밥에 후추 외에는 감미료를 안 썼다. 맛없어도 맛있게 먹어준 식구들에게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아내가 먹고 아기가 먹을 밥, 그게 내가 음식할 때 처음 생각하는 기준이다.

YTN 사이언스에서 만든 <한국의 맛>이라는 음식 다큐를 오랫동안 보았다. 사실, 처음부터 다 본 건 아니다. 뜨문뜨문 보다보니, 정말 재밌어서, 결국 1편부터 마음먹고 찬찬히 공부하듯이 보았다. 이 방송은, 각 지역별로 괜찮은 식당 몇 개 골라 한국식 음식을 찬찬히 보여주는 다큐 프로그램이다. 음식 하나하나 다 맛있어 보이고, 그 정성 하나하나 다 대단해 보인다. 그래서 맨 앞에서부터 이 방송을 공부하듯이 하나씩 봤다.

방송 포맷은 뻔해 보였다. 조상 대대로 지켜온 우리의 맛, 그걸 살려내고 지켜온 특별한 사람, 그걸 옛맛으로 기억해서 찾아오는 오래된 손님, 그게 내가 이해한 포맷이다. 그걸 경상도에서도 하고, 강원도에서도 하고. 점점 지역을 쪼개 강화도에서도 하고, 그렇게 진행한다. 뻔한 포맷이지만, 그 맛을 지켜온 사람들의 정성, 거기에 ‘뻑’ 간다.

“이게 한국의 맛이야!”

그게 수긍이 가니까, 1편부터 구해서 보는 수고를 나도 감내했다. 그런데 그걸 보다보니, 마음에 걸리는 게 생겼다. 옛맛을 지키기 위해 수고스럽지만 가마솥에 군불을 때면서 국물을 만들고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 정말 감동적이었다. 만든 사람이나 찍는 사람이나, 많은 시간을 들여 우리가 지켜야 할 음식문화를 보여주고픈 정성, 나는 두 손으로 박수칠 수밖에 없었다.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행곡리 행촌마을에서 농촌생활을 하는 정홍섭 전 신라대 총장이 가마솥으로 음식을 만들기 위해 불을 지피고 있다. (출처 : 경향DB)


양반집 비법, 유명한 가게의 전통 가마솥, 그 감동 사이로 틈틈이 등장하는 빨간 플라스틱 국자가 나에게 철학적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전통을 중시해 밤새 군불을 지피면서 가마솥에 끓인 그 국물은, 많은 경우, 빨간 플라스틱 국자를 거쳐간다.

“뭐야, 저 플라스틱 국자는?”

복잡한 기술적인 논의를 여기에서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 열에 녹은 플라스틱은, 아주 조심스럽게 만든 예외적인 제품을 제외하면 환경호르몬이라고 우리가 이해하고 있다. 석유에서 추출한 제품들, 그게 원래 인체 구성물질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우리 몸에 문제점을 일으키고, 그걸 우린 환경호르몬이라고 부른다.

정성을 다해 가마솥에 끓이고, 온갖 좋은 재료를 넣어 펄펄 끓는 국물을 플라스틱 국자로 휘휘 젓는 것, 그건 한국의 맛이 아니라, 한국의 환경호르몬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맛, 너무너무 지지하지만, 펄펄 끓는 사골국을 젓기 위해 들어간 플라스틱 국자, 그건 아니라고 본다. 한국의 맛이 보건적으로나 생태적으로 납득 안되는 이 상황, 그건 피하도록 같이 노력하면 좋겠다.


우석훈 영화기획자·경제학 박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