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월,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한국 경제가 신자유주의로 전환되기 시작한 시점을 언제로 볼 것인지는 여러 의견이 있겠으나, 신자유주의를 새로운 ‘국시(國是)’로 내걸고 하나의 국가 개조 계획으로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시점은 이때로 보는 것이 옳다. 이제 20년이 되었다. 향후 20년도 우리는 이를 계속 국시로 삼아 똑같은 길을 갈 것인가. 2015년의 우리들의 절박한 질문이다.

골자를 추리자면 믿을 수 없이 거칠고 단순한 논리이다. 경제를 살리는 열쇠는 오로지 기업만이 쥐고 있으며, 기업 활동의 성쇠는 다시 투자자들에게 있으며, 그들의 투자 여부는 미래 수익에 대한 그들의 예측 평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기업과 투자자의 의욕을 살리기 위해 경제뿐만 아니라 온 국가와 사회 전부가 전면적으로 개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 활동에 장애가 되는 또 지구적 자본의 유입을 가로막는 모든 규제는 철폐해야 하며, 투자자들의 투자 의욕을 감퇴시키는 높은 세율과 ‘징벌적인’ 조세 정책들은 모두 낮추고 없애야 한다. 사회는 자본의 수익 창출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언제든 제공할 수 있는 원천이 되어야 한다. 노동 시장은 최대한 유연해져야 하며, 사회 복지 지출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게다가 경제를 ‘살리고’ 싶다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국가는 기업과 투자자들이 기뻐하고 만족할 만한 정책과 제도들을 공격적으로 입안, 추진해야 하며 모든 개인과 사회 전체는 자신의 ‘자산 가치’를 올리기 위해 불철주야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한다.

이러한 내용의 신자유주의는 지난 20년간 ‘국시’의 위치를 지키면서 한국 사회에 군림해왔다. 그동안 두 번의 정권 교체와 두 차례의 세계 경제 위기라는 큰 변화들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이러한 ‘국시’는 한 번도 수정되거나 바뀌지 않았으며 오히려 갈수록 더욱 공고해져만 갔다.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전보다 더 이를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것을 공언하였고, 경제 위기가 터질 때마다 이는 아직도 신자유주의적 개조가 부족하다는 증표라면서 더욱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정당화하는 계기로 사용되었다. 마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우리는 신자유주의가 약속하는 풍요와 번영의 낙원이 도래할 날만 하염없이 기다리며 그러한 국가 및 사회 개조에 따르는 온갖 수고와 고통을 묵묵히 감래해 왔다.

[장도리] 2014년 9월 1일


이제 20년이 되었다. 경제는 살아났는가? 경제 전체는 이미 장기적으로 저성장 기조로 들어섰고, 산업 구조는 형해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래 지향적인 구조 전환은커녕 갈수록 저부가가치의 서비스 산업만 팽창해 가고 있으며 부채까지 한없이 불어나면서 숨통을 조이고 있다. 풍요와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은 도대체 누구인가? 대기업과 금융 기관과 국가 기구의 최상부를 장악한 극소수의 지배층을 뺀 나머지 압도적 다수의 대중들은 경제적 불안에 찌들 대로 찌들어 있다. 순자산이 10억원을 넘는 가계의 비율이 전체의 4%도 채 되지 않는다는 통계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자살률을 위시한 각종 사회 지표의 악화는 누누이 언급하기도 고통스럽다.

요컨대, 지난 20년간 신자유주의라는 ‘국시’를 충실하게 따른 우리에게 찾아온 것은 경제적 활력의 잠식, 불평등의 비약적 심화, 사회 전체의 붕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말만 요란하고 결과는 형편없는 이러한 일이 앞으로도 계속돼야 할까? 그게 아니라면 전혀 다른 경제 이론과 경제 철학에 근거한 새로운 ‘플랜B’로 과감하게 경로 수정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이러한 회의와 모색은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IMF, OECD, 아시아개발은행 등 한때 신자유주의 경제의 아성이었던 국제기구에서는 최근 몇 년간 임금 소득의 상승이 경제 성장의 실마리요, 복지의 강화야말로 성장의 전제 조건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들을 쏟아내고 있다.

양(羊)은 온순하지만 생명력이 강한 동물로서 척박한 돌밭에 풀어놓아도 땅속 풀뿌리까지 모조리 뜯어먹으며 왕성하게 번식하는 힘을 가졌다. 지난 20년간 묵묵히 꿋꿋하게 일하며 돈 벌며 아이 낳고 기르며 살아온 우리 한국인들도 이제 양의 해를 기점으로 위의 질문을 본격적으로 던질 때가 되었다.


홍기빈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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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