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희망을 품고 맞기 마련이다. 우리는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전보다 삶이 나아지기를 기대한다. 일자리 없는 이는 새해에 직장 구하길 원하고, 집없는 설움에 시달리는 이는 편안한 보금자리 꿈을 키울 것이다. 큰 차를 타거나, 먼 곳으로 여행하기를 소원하는 이도 있다. 책을 많이 읽고, 외국어를 익히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 금연을 실천하겠다는 계획도 세운다. 대부분 ‘돈’이 들어가는 데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모든 희망을 이룰 순 없다. 선결조건이 있다. 가정이 평안해야 하고, 직장이 탄탄해야 한다. 국가는 버팀목이 돼야 한다. 더 나아가 이제는 세계경제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말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만나 “경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 ‘경제 실패 프레임’이 워낙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어 그 성과가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실제 성과보다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해 보도하는 일부 언론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서 “국민이 느낄 수 있도록 소통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성과는 무엇일까.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7%가량으로 예상된다. 목표했던 3%에는 미치지 못했어도 야당에서 주장하는 ‘실패’나 ‘낙제’ 수준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예측을 보면 나홀로 호황을 구가했다는 미국은 2.9%로 한국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주요국도 1%대 성장에 머물렀다. 이웃 일본도 1.1%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수출은 처음으로 6000억달러를 넘어섰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실체가 불분명하기는 하지만 국민소득 3만달러·인구 5000만명 이상이라는 ‘3050 클럽’에도 가입하게 됐다. 3050 클럽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한국 등 7개국뿐이란다.

 

이만하면 ‘아! 대한민국’을 외쳐야 하나. 그러나 통계는 통계일 뿐이니 착각하지 말자.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부의 집중이 갈수록 심해지는 게 한국경제의 현실이다. 부자들이 끌어올린 평균이 지표에 사실상 분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수출기업 수의 1%도 안되는 대기업이 전체 수출액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지난해 통계는 아직 집계하지 않았으니 전년 수출기업 수와 수출액 비중을 2018년에 적용해봤다. 수출기업 수의 97.4%인 중소기업은 한 곳당 수출액이 평균 117만달러였다. 자산규모 10조원 이상 대기업은 한 곳당 5억81만달러로 중소기업 평균의 400배를 훌쩍 뛰어넘는다. 수출이 호조라고 좋아할 게 아니다. 한 해 10억원 안팎의 수출로 고전하는 대부분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책을 고민해야 한다.

 

국민소득에도 허수가 있다. 통계청이 잠정집계한 2018년 기준 4인 가족 가구소득은 8256만원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시대니 4인 가족이면 1억3000만원은 넘어야 할 텐데 턱없이 적다. 주상영 건국대 교수가 OECD 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인 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은 2016년 기준 56.2%이다. 프랑스에 비해서는 10%포인트 가까이 낮고, OECD 평균보다도 5%포인트가량 떨어진다. 한국은 경제성장의 과실이 가계보다 기업에 더 많이 돌아간다는 뜻이다. 가구소득 역시 평균값이다. 소득이 가장 많은 20%인 5분위가 1억3383만원이니 그나마 3만달러와 비슷해 보인다. 가장 적은 1분위는 10분의 1 수준인 1245만원이다. 상위 부자 20%를 제외한 보통 가구의 소득은 4000만원이 안될 수도 있다. 지표는 3만달러여도 현실에서는 1만달러 이하 시민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평균으로 치장한 지표는 왜곡돼 있다. 나뿐 아니라 훨씬 더 많은 다른 이를 포함해 뭉뚱그렸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한 분 한 분의 삶이 나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한 것처럼 다들 내가 잘살기를 바란다. 그런 측면에서 ‘성과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말은 아쉽다. 대통령이나 정책 담당자에게는 성과일지 모르겠으나, 개인에게는 전혀 체감할 수 없는 뜬구름 같은 이야기일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 경제계 인사들이 신년사를 내놨다. 한결같이 올해 경제상황을 걱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규제개혁과 혁신만이 경제활력을 불어넣는 길이라고 강조하는 목소리가 많다. 경제활성화는 성장률과 국민소득 같은 지표를 끌어올리는 게 전부가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 자산 불균형, 빈부 격차를 줄여 경제선순환 기반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국가 전체보다 시민 각자의 삶이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한다. 그래서 소득주도성장은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이다.

 

<안호기 경제에디터>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