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에게 학교 시험문제와 답안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 숙명여고 교사가 구속됐다. 법원이 시험문제 유출에 대한 정황증거를 인정한 셈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동안 해당 교사와 두 딸의 행적에 관한 언론 보도가 넘쳐났다. 시험 답안지가 교무실 금고에 보관된 직후 야근을 했다, 정정되기 이전의 오답을 답안에 그대로 적었다, 문제가 불거진 이후 컴퓨터를 교체했다….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 만한 정황들이다. 숙명여고 학부모로 이루어진 ‘숙명여고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고 한다. 그분들의 분노가 느껴진다. 관련자들을 단죄하고 이러한 부정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라고 한다. 입시제도 개편도 주장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아파트 평수와 학교 등수에 미친 나라다. 자기가 사는 집의 크기와 자식이 입학하는 대학의 이름에 따라 자신의 위치가 규정된다고 믿는 사회다. 소유한 부동산과 자녀가 다니는 대학에 대한 만족의 정도가 다른 사람들과의 상대적 비교에 의해 결정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위치재(positional goods)’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발전을 견인하는 요소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서 좋은 집에 살고 싶다, 나는 고생해도 내 자식은 명문대에 입학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 세속적 욕망 덕분에 한국인은 세계 최고의 근면성과 교육열을 가질 수 있었다.

 

경찰 수사관들이 5일 시험지 유출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 숙명여고를 압수수색한 뒤 압수물 상자를 들고 학교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러한 심성이 만들어낸 역동성이 지금도 한국 사회에 작동한다고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아파트는 거주공간이 아니라 투기대상이 되었고, 입시는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극단적 제로섬게임으로 전락했다. 위치재로서의 긍정적인 기능보다는 부정적인 ‘위치 외부효과’를 양산하고 있다. 숙명여고 사건을 계기로 잠시 모든 이해관계를 내려놓고 자신과 한국 사회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잘 알고 있다, 감정개입 없이 입시 문제를 바라보기 얼마나 어려운지. 그래도 더 이상은 안된다. 대학 입시가 한국 사회를 정신적, 정서적 파멸로 몰아넣고 있다. 공공선과 배려와 겸양을 가르쳐야 할 교육의 세계에 승자독식의 광기만이 남아 있다. 이것이 진정 우리가 원하는 세상인가.

 

고등교육 일선에 있는 교수조차도 자식 문제에 관한 한 합리성을 상실하기 일쑤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직장에 “자기 자식이 대입에 성공하면 그 입시제도는 좋은 제도이고, 대입에 실패하면 나쁜 제도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돌아다닐 정도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정책이나 제도는 없다는 것이 후생경제학의 첫 번째 가르침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입시제도 개선을 통해 입시비극을 해결하기 힘들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동안 드러난 수많은 입시부정과 숨겨진 더 많은 부정행위를 감안할 때 해마다 되풀이되는 입시 갈등은 제도 문제가 아님을 확신한다. 많은 사람들이 수시와 입학사정관제가 공정성을 상실했다고 말한다. 비판받을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시험 하나로 학생 능력을 평가하고 대학을 결정하는 방식이 대안인가. 이 제도가 갖고 있는 표면적 공정성 이면에 존재하는 망국적 사교육의 폐해는 어찌할 것인가. 강남 사교육에 가까이 갈 경제적 능력이 없는 수십만 학부모와 학생들의 박탈감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이것이 과연 공정한 경쟁인가.

 

입시 모순의 본질은 자녀의 명문대 입학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부모들의 천편일률적 선호에 있다. 수요는 폭발하는데 공급이 한정돼 있으니 가격은 폭등할 수밖에 없다. 자녀교육에 대한 절대적 선호를 충족하기 위해 탈법과 편법이 뒤따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숙명여고 사태는 그 완결판을 암시하고 있다. 두 아이를 국내 대학에 보낸 경험이 있는 필자에게도 생소하고 거부감 드는 행위가 난무한다. 위장전입이나 수백만원짜리 맞춤형 사교육 정도는 더 이상 새롭지도 않다. 명문대라는 천국을 향해 달려간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학부모와 입시생 모두 낭떠러지를 향해 전력 질주하는 형국이다.

 

입시생을 둔 학부모의 대오각성이 필요하다. 눈을 크게 뜨고 멀리 봐야 한다. 더 이상 좋은 대학이 좋은 직장과 인생 성공을 보장하는 세상이 아니다.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입시와 세상 경험으로 자녀의 미래를 재단하지 않았으면 한다. 창의와 협업과 배려야말로 21세기형 인재의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숙명여고 사태를 보며 학부모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자녀에게 자유를 허락하라고.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