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 전엔 거시경제를 주로 통화정책으로 관리했다. 인플레이션이 거시경제 주요 현안일 땐 통화정책이 재정정책보다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제로 금리와 양적 완화 등 초강력 통화정책을 써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각국 정부는 재정정책을 폈고 경제가 조금씩 활성화되었다. 저금리, 저물가, 총수요 부족 상황에서는 재정정책의 효과가 크기 때문에 그동안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은 거시경제관리 수단으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함께 쓸 것을 권고하고 있다.

 

IMF는 그동안 한국 경제가 겪고 있는 청년실업, 여성고용, 노인빈곤, 저성장 침체를 타개하기 위해 적극적 재정정책을 권고하는 연례협의보고서를 내왔다. 그런데 2018년 연례협의보고서는 저출산 고령화에 의한 복지비용 증가로 장기 재정건전성이 악화될 것이기 때문에 복지 확대에 신중해야 한다는 한국의 재정 보수주의자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다.

 

IMF는 한국이 재정건전성과 물가안정 등 거시건전성이 양호한 소수의 선진국 중 하나라고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상황에서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자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개인들은 저축을 증가시켰고 GDP 대비 민간 소비 비율은 급락하여 내수 침체를 겪고 있다고 본다.

 

IMF는 현 제도가 유지될 때 고령화로 한국의 장기재정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재정 기준선(base line) 전망을 했다. GDP 대비 정부 수입 비율이 일정하다고 가정할 때 고령화에 의한 복지비용이 급증해 장기재정은 지속 불가능하고 파탄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의 재정 보수주의자 말대로 지금부터 복지 확대에 신중해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IMF는 복지 확대와 생산성 향상을 연결시키는 근원적 타개책을 권고한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장기적으로 하락하는데, 인구 감소에 의한 고용 감소요인이 가장 결정적이다. 한국은 소득세 실효세율이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편에 속하며 부가가치세와 재산세를 올릴 여지가 많아 조세의 효율성과 형평성 등 과세 기반을 강화하면 증세를 충분히 할 수 있다. 또한 국가채무 비율이 매우 낮고 저금리 기조가 상당기간 유지될 것이기에 국채 발행 여력도 크다. 증세와 국채 발행으로 마련한 재원을 소비 침체와 고용 감소 등 잠재성장률 저하의 주요 요인을 해결하는 데 집중 투입하면 소비주도 성장이 이뤄지고 대외 충격의 완충 기능도 강화하며,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과 청년 고용률 상승에 의한 성장 및 수입 증대로 재정도 장기 지속가능해진다는 것이다.

 

IMF는 이렇게 할 때 통일 대비 재정지출 여력도 커지며, 통일은 남북 간 소득격차 완화를 위한 복지지출, SOC 투자 등 재정비용 증가도 초래하겠지만 노동력과 잠재성장률 증가라는 이익도 가져오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비관적 요인이 아니라고 본다. IMF는 완전고용을 달성하면서 경제도 안정화하는 균형실질금리 수준을 정확히 알기 어렵고, 통화정책이 자본흐름, 환율 변동, 금융시스템 안정 등에 미치는 불확실성이 커 거시경제관리 미세조정에 통화정책을 쓰는 데 신중해야 하며, 지금 같은 저금리·저물가 상황에서는 승수효과가 큰 재정정책을 적극적으로 쓰는 것이 오히려 더 바람직하다고 한다.

 

한국의 실업률은 3.7%로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고 청년 체감실업률은 22.7%다. 한국은행의 올해 예상 물가상승률은 1.7%로 안정적이다. 이런데도 완전고용을 위한 확장적 거시경제 정책을 쓰지 않으면 정부의 직무유기다.

 

IMF 보고서가 말하듯이 한국 경제는 총수요 부족을 겪고 있다. 일자리는 총수요에 의해 결정되는 파생수요다. 총수요를 증가시켜야 일자리도 생긴다. 고용충격이 있는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을 과감하게 할 생각이면 재정전략도 이에 맞춰야 한다. 집권 초 재정전략이 최저임금 인상에 맞춰 더 과감했다면 정부는 지금보다 더 유리한 상황에 있었을 거다.

 

2017년 결산을 해보니 추경 때 예상보다 국세가 14조3000억원 더 걷혔다. 1월 고용통계에서 취업자가 전년 동월 대비 34만명 증가했지만, 농림어업 부문의 전례 없던 10% 증가에 기인한 것으로 최저임금 인상의 고용충격이 없다고 안심하기 이르다. 조선업 분야 실업자는 계속 늘어나고, 군산경제는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타격을 받을 거라 한다. 미국 금리 인상,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공격 등으로 경제의 불확실성은 심화되고 있다.

 

 지금 초과 세수로 거둔 막대한 돈을 정부 금고 안에 쌓아두고 있을 만큼 한가한 시절인가? 물가안정이 한국은행의 책무라면 완전고용은 정부 책무다.

 

<조영철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