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라나 포루하는 올해 초 한국에 소개된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에서 경제에 기여하는 것 없이 엄청난 소득을 가져가는 금융인을 테이커스(takers)라 불렀다. 심지어 거저먹는 사람이라 혹평했다. 메이커스(makers)는 기업 같은 생산자를 뜻한다. 그는 “고용은 4%만 책임지고 전체 기업 수익 25%를 가져간다”고 테이커스를 비판했다. 테이커스의 대표적 사례는 월가의 대형 은행들이다.

 

한국 금융회사들도 글로벌 경쟁력은 떨어지고 이자장사에 주력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국내 은행들에 “예대마진 위주의 영업에 안주하며 가계대출 증가를 통해 이익을 누리는 것이 바람직한지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 한 예다.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들은 지난해 2조~3조원대에 이르는 역대 최대규모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그러나 금융업의 일자리 비중은 3%에 불과하고, 채용비리 의혹은 어느 은행 가릴 것 없이 터졌으며 소비자 민원은 빈발해 ‘약탈적’이란 말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8년4월12일 (출처:경향신문DB)

 

이는 ‘금융 검찰’로 불리는 금융감독원이 제 역할을 못한 게 주된 이유다. 외환위기 후 은행·증권·보험감독원 등을 합친 통합감독기구로 출범한 금감원은 검사권을 통해 금융회사들을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고, 법률이 규정하지 못하는 경우 재량 범위가 넓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칼을 휘두를 수 있다.

 

금융은 경제의 대동맥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금감원장의 도덕성, 신뢰는 존립에 필수적 요인이다. 실상은 어떠했나. 문재인 정부 출범 전까지 역대 10명의 금감원장 중 5명이 외환은행 헐값 매각, 각종 뇌물·로비 사건에 연루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거나 구속됐다. 금감원이 그간 금융회사의 건전성 제고,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설립목적에 충실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난해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금융당국에 대한 불신이 매우 큰 것 같다는 얘기가 금융권에 돌았다.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재벌편을 든 특정인에 대한 반감이 매우 높다는 얘기도 들렸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금융계 적폐청산은 예고된 수순이었는데 첫 단추부터 꼬였다. 11대 금감원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김조원 전 감사원 사무총장(현 한국항공우주산업 대표)은 결국 기용되지 못했다. 감사원 출신이 금감원장으로 온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전문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었다.

 

금융권과 관료 사회에서 “그래도 믿을 건 산전수전 다 겪은 ‘모피아’(금융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밖에 없을 것”이란 분위기가 형성되던 차에 등장한 인물이 최흥식 전 금감원장이었다. 민간 출신 첫 금감원장이었던 그는 외환위기 당시 통합 금융감독기구 설계에 참여했고 금융연구원장, 하나금융지주 사장을 지내 전문성만큼은 인정받았다. 개혁성과 추진력에 의문부호가 달렸던 그는 결국 채용비리 의혹으로 6개월 만에 중도 사퇴했다.

 

뒤를 이은 사람이 김기식 현 금감원장이다. 그는 취임사에서 “금감원이 금융소비자 보호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란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으며 금융시스템 안정과 금융소비자 보호를 금감원의 양대 책무로 언급했다. 또 “감독기능이 정치적, 정책적 고려에 의해 왜곡돼선 안된다”고 강조하며 혼연일체를 유달리 강조해 온 역대 금융관료 출신 원장들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많은 금융권 인사들이 그에게 불편한 심기를 가졌으리란 점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19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김 원장과 함께 활동했던 자유한국당 김용태 의원은 그를 두고 “가장 독하고 가장 질기고 가장 철두철미한 사람”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2015년 4월 국회보). 금융과 재벌에 관한 그의 개혁성은 많은 사람이 인정하는 바다.

 

피감기관의 지원으로 외유성 출장을 다녀왔다는 의혹이 확산되면서 그는 진퇴의 갈림길에 서 있다. 누구보다 깨끗할 것으로 여겨져왔기에 여론도 악화돼 있다. 자리를 지킨다고 해도 금감원장으로서 그의 권위는 이미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그의 거취가 어떻게 결정되든 간에 김기식이란 인물이 금감원장에 기용될 수밖에 없었던 한국 금융의 현실은 되돌아봐야 한다. 그가  금감원장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하면 가장 좋아할 사람들은 누구일까. 김기식호 금감원이 금융회사 대주주 자격을 더 까다롭게 심사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재벌 금융회사 경영진들, 금융업 성장에만 치우친 전문가들, 금감원을 장악하고 싶은 공무원들, 갑질에 익숙해진 금감원 직원들, 여비서 프레임까지 짜가며 김기식 죽이기에 골몰했던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아닐까.

 

<오관철 경제부장>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