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5월 7일자 지면기사 -

 

동물은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마려우면 싼다. 자기보다 약한 짐승을 잡아먹고, 강한 상대에겐 꼬리를 내린다. 동물의 왕국에는 생존과 번식을 위한 본능만 있다.

 

철학자 알렉상드르 코제브에 따르면 타자와 교류하려는 욕망이 인간의 조건인데, 반대로 동물은 욕구만을 갖는다. 이 ‘욕구’란 생리적인 것으로 타자와의 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약육강식의 야생에 수직적 먹이사슬만 존재하는 이유다. 동물은 그저 식욕이나 번식욕 같은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다른 동물을 잡아먹고, 교미한다. 결핍이 생기는 즉시 해소하지 못하면 사나워진다. 굶주리거나 발정이 나면 울부짖고 길길이 날뛴다.

 

권력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사람이 약자에게 하는 부당행위가 ‘갑질’이다. 경비원 폭행한 피자집 사장, 아들 보복 폭행한 ‘빠따’ 회장님, 술만 마시면 문제를 일으키는 그 집 셋째 아들, 조폭보다 더 극악무도한 ‘맷값’ 깡패, 백화점 점원 무릎 꿇린 모녀, 운전기사에게 상습적으로 욕설한 제약회사 재벌 2세 등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공통점은 ‘인성 결핍’이다. 인성(人性)은 말 그대로 사람의 성품인데, 그걸 갖추지 못했으니 인간보다 동물에 가깝다. 입만 열면 개, 소, 돼지를 찾는 것도 “뭐 눈에는 뭐만” 보이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오너 일가의 갑질이 또 화제다. 재벌들끼리 “누가 더 패악을 잘 부리나” 경쟁하는 문화라도 있는지 기존 갑질들보다 더 자극적이고 ‘막장’이다. 제 분을 못 이겨 날뛰면서 소리 지르고 물건 집어던지고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설을 뱉는 짓은 제왕적 권위주의나 분노조절장애 같은 말로는 다 설명이 되지 않는다.

 

모녀는 발악하듯 고함을 질렀는데, 사람의 음성이라기보다 동물이 울부짖는 소리로 들렸다. 딸은 무언가 불만족스러운 상황이 해소되지 않자 유리컵을 던지고 물을 뿌리는 등 과도한 공격성을 보였다. 동물들이 그렇게 한다. 엄마도 손찌검과 발길질은 기본이고 “금쪽같은 내 새끼 화장실 가다 넘어지면 책임질 거냐”며 난동 부렸다. 이 역시 동물의 ‘새끼보호행동’과 유사하다. 아빠는 그 망동을 보면서도 뒷짐만 졌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닌가? 사바나 초원의 사자 가족을 보는 듯하다. 인성의 결여를 맹수성으로 채운 집안이다.

 

초등학교 때 토요일 방과 후 주한미군방송에서는 미국 프로레슬링 경기가 방영되었다. 그걸 보고 있으면 엄마가 채널을 돌려버렸다. 비디오 게임이나 조폭 영화 같은 것들도 폭력을 조장하는 유해물이라며 접근을 막았다. 그런다고 안 봤을까? 오락실도 열심히 다니고, 교실 책상 뒤로 밀고 레슬링도 하고,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같은 조폭 영화 대사도 따라했다. 하지만 대기업 일가의 자녀들처럼 동물적 인간으로 성장하지는 않았다. 타인을 나와 동등한 존재로 여기는, 지극히 상식적인 ‘인간사회’에서 살아온 덕분이다. 권력 같은 것을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부모 아래서 이웃과 김장김치 나누고 ARS로 몇 천원 용돈이나마 수재의연금도 보내면서, ‘을’들은 그렇게 자랐다.

 

그룹 총수 집에서는 매일 <동물의 왕국>만 봤을까. 그걸 보며 모방한 결과가 오늘의 갑질일까. 수행원, 가정부, 운전기사, 정원사, 요리사, 회사 직원 등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자신들의 안위와 만족을 위해 존재하는 기계부품쯤으로 생각하는 돼먹지 못한 특권의식이 문제다. 어려서부터 부모가 타인들을 하등한 존재로 여기며 행패 부리는 걸 보며 자랐으니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법을 알 리 만무하다. 자기 종족 외에 타자들은 모두 먹잇감이나 공격 대상으로 여기는 동물의 습성이 내면화된 야생의 왕국, 그게 우리 대기업 문화라면 더 이상 그들에게 먹이를 줘선 안 된다. 대략 1만3000년 전, 야생 늑대는 굶주림을 못 견디고 민가로 내려와 사람에게 꼬리를 흔들고 굴종하며 애완견이 되었다.

 

<이병철 시인>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