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을 정상적이라고 믿도록 국민에게 강요한 두 가지 비상식적 사건이 재작년과 작년에 있었다. 첫 번째가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의 행적이었다. 두 번째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찬성한 국민연금의 행태였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관한 사실은 이렇다. 두 기업은 삼성물산 주식 1주를 제일모직 주식 0.35주의 비율로 교환하여 합병하기로 이사회에서 의결했다. 그러나 삼성그룹 이재용 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제일모직 주주에게 너무 유리하게 정해진 비정상적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국외 헤지펀드, 국내 소액주주들로부터 쏟아졌다. 유수의 국내외 의결권 자문기관들도 국민연금에게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에 반대할 것을 권고했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는 삼성물산 주식 가치를 4배 정도 더 높이 평가해 적정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을 1 대 1.21로 분석했다.

 

국민연금은 적정한 합병 비율이 1 대 0.46이라고 내부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따라서 삼성물산 주식을 상대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던 국민연금은 합병이 그대로 진행되면 약 3500억원의 부당 손실을 입게 됨을 알고 있었다. 반면 이재용 일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약 7400억원의 부당 이득을 얻게 되었다. 사실상 합병을 통해 국민연금 가입자의 자산을 삼성그룹 총수일가에게 무상으로 이전하는 셈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국민연금공단 투자위원회는 합병에 찬성한다고 의결했고, 국민연금의 찬성으로 인해 합병안은 주주총회에서 통과되었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2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들어가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문 전 장관은 옛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 의결하도록 강요한 의혹을 받고 있다. 서성일 기자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합병비율을 어떻게 결정한 것일까? 자본시장법 시행령에서는 이사회 의결 이전 일정기간의 주식 종가를 가중 평균해 합병 비율을 계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삼성은 이 기준을 충족한 합병 비율이므로 불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합병에 반대한 주주들이 청구한 주식매수가격 결정 판결에서 서울고등법원은 1 대 0.414를 적정 비율로 제시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가? 자본시장법 관련 규정은 합병 대상 기업의 이사회가 각사의 주주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충실히 합병 협상을 할 것이라는 가정을 깔고 있다. 그런데 이런 가정은 동일한 재벌총수에 의해 지배되는 계열사 간에는 성립되지 않는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서 볼 수 있듯이, 양 기업의 이사들은 총수일가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삼성물산 주가가 제일모직 주가에 비해 최저치로 내려간 시점을 합병 비율 산정의 기준일로 선택했던 것이다. 결국 재벌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애써 외면한 비상식적 법규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합병 비율 산정 시기에 삼성물산의 주가를 의도적으로 저평가되도록 한 정황이 있는데, 여기에도 국민연금이 동원된 것이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는 것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기업합병 이사회 의결이전 시점까지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주식을 지속적으로 대량 매도해 삼성물산 주가의 급격한 하락을 주도했다. 그러고는 이사회 의결 후에 삼성물산 주식을 다시 집중 매입했는데, 삼성물산 주가가 합병비율에 비해 높게 평가된 상태에서였다. 주주총회에서 합병을 찬성할 요량이었다면 이는 매우 비상식적인 매입이다. 국민연금의 비상식적 매도·매수 행위가 주주총회에서 합병 찬성이라는 비상식적 결정에 선행했었던 것이다.

 

이해되지 않았던 비상식의 연속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계기가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였다.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결정 전후 이재용 부회장과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의 독대, 이 부회장과 박 대통령의 독대, 삼성이 최순실 일가를 위해 송금한 78억원이라는 퍼즐 조각들이 나타난 것이다.

 

‘삼성·국민연금 게이트’는 세습을 위해 국민의 노후자금마저 동원하는 재벌총수의 사익 편취의 결정판이다. 정경유착의 모태가 되고 있는 재벌 세습과 황제경영을 해소할 근본적 개혁 없이는 정부는 국민의 정부가 아닌 소수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의 하수인에 불과하게 됨을 똑똑히 보여준다. 재벌 개혁 없이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도 형해화될 수밖에 없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소장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