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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선거 때마다 빼놓지 않고 나왔던 “출사표를 던졌다”는 표현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출사표를 던졌다”함은 선거에 출마하기로 했다는 뜻이다. 원래 출사표(出師表)란 장수가 군대를 전쟁터로 출동시킴을 임금께 아뢰는 글을 말한다. 촉한(蜀漢)의 제갈량(諸葛亮)이 2세 황제 유선(劉禪)에게 지어 올린 출사표가 가장 대표적이다. 상대방의 영토를 빼앗기 위해 무력으로 싸우는 것이 전쟁이라면 선거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 상대방과 경쟁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선거는 종종 전쟁에 비유되곤 한다. 따라서 후보자의 출마선언을 출사표라고 불러주는 것을 굳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꼭 들어맞는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도 없다.

 

제갈량의 출사표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 후반부에 나오는 삼고초려(三顧草廬)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신은 본시 아무 관직도 없는 포의(布衣)의 신분으로 남양(南陽) 땅에서 밭을 갈며 가난하게 살고 있었는데, 선대 황제 유비(劉備)가 초가집 속의 자신을 미천하게 여기지 않고 스스로 몸을 굽히어 세 번이나 돌아보며 세상일을 물었다는 것이다. 이에 감격하여 힘을 다해 도울 것을 승낙하게 되었다는 사연이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줄 뿐 아니라 자신을 대함에 있어 겸손까지 갖추어 주었으니, 삼고초려의 고사(古事)는 고금을 막론하고 출사표를 읽는 지식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측면이 있었다. 게다가 출사표를 올린 뒤 위(魏)나라 정벌을 떠난 제갈량은 애석하게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한다. 당나라 시인 두보는 촉상(蜀相)이라는 칠언율시에서 “군대를 일으켰으나 미처 승리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죽으니, 길이 영웅으로 하여금 눈물이 옷깃에 가득하게 하도다”라며 탄식한다. 이 구절 때문이었는지 “출사표를 읽고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충신이 아니다”라는 말이 예로부터 전해 온다.

 

삼고초려 같은 감상적 내용이 출사표의 전부가 아니다. 출사표는 첫머리부터 촉나라의 정세에 대한 제갈량의 냉철한 판단으로 시작된다. 당시 익주(益州)는 오랜 싸움으로 지치고 쇠약해져 그야말로 위급존망의 시기라는 것이다. 게다가 촉나라가 상대하던 위(魏)와 오(吳)는 천하의 10분의 9에 해당하는 막강한 형세였다고 한다.

 

나는 제갈량이 출사표를 쓰던 촉한(蜀漢)의 형편과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이 어쩐지 비슷하다고 느낀다. 지금의 우리나라도 많은 국민들이 안보위기와 경제위기를 걱정할 만큼 매우 위급한 시기이다. 게다가 어제 취임한 새 대통령은 안보와 경제를 놓고 미국의 카우보이 트럼프 대통령, 중국의 황제 시진핑 주석, 일본의 쇼군 아베 총리, 러시아의 차르 푸틴 대통령을 상대해야 한다.

 

전쟁터로 떠나며 제갈량은 출사표의 전반부에서 유선(劉禪)에게 간곡한 당부의 말을 남긴다. 그 핵심은 궁중(宮中)과 부중(府中), 즉 왕실인 유씨 집안사람들과 행정부의 사람들이 모두 한 몸이니, 착한 사람의 벼슬을 높이고 악한 자에게 벌을 내리는 것을 다르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추천할 인재들의 이름을 인물평과 함께 일일이 거명하고 있다.

 

충성과 지혜에 있어 제갈량은 그야말로 만고의 표상이 아닌가? 그런 제갈량이 위기에 빠진 나라의 장래를 깊이 고민하여 남긴 마지막 책략이 결국 궁중과 부중을 동일하게 대하라는 데에 지나지 않았었다. 세상에 없던 기상천외의 비법이 아니었던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여 시시할 정도지만 어떤 정권이든 사(私)가 공(公)을 이기지 못하도록 하는 데에 성공하기란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성공의 사례보다는 실패의 사례가 허다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정부가 실패한 이유도 궁중(宮中), 요즈음 말로 바꾸어, 당선에 기여한 사람들, 오랜 인연을 맺어온 사람들, 자기 당이나 자기 진영의 사람들을 사사로이 우대했던 데에 있지 않았던가?

 

바야흐로 인공지능을 이용한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된 오늘날,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이 선출된 이 시점에서, 1800년 전의 출사표 얘기는 주자학의 냄새를 풍기는 고리타분한 말로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시대와 제도가 달라졌다 할지라도 나라를 이끄는 원리는 같다고 생각한다. 지금 다시 제갈량이 살아 돌아와 우리의 새 대통령에게 조언의 말씀을 드린다 해도 그가 드릴 말씀은 아마도 출사표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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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