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어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소환됐다.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받는 피의자 신분이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가 걸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박근혜 대통령의 도움을 받는 대가로 최순실씨 모녀에게 수백억원을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내 1위 재벌 총수이자 한국의 자랑인 삼성전자 최고경영자가 법의 심판대에 오르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가 됐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각종 인허가와 제도, 정책 등을 통해 기업의 명줄을 쥐고 있는 최고 권력자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1988년 일해재단 비리 관련 국회 청문회나 2003년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 당시 이 부회장의 아버지 이건희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이 펼쳤던 논리와 같다. 그러나 누가 이 부회장을 박근혜 정권의 피해자라고 믿을까. 그는 정권과의 거래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그를 수혜자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2일 오전 박영수 특별검사 사무실에 출석했다. 최순실씨 일가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공단의 도움을 받았다는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이석우 기자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이 부회장의 뜻대로 술술 풀렸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옛 에버랜드)의 합병 과정에서 두 회사의 주식 산정 비율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은 합병에 찬성했다. 3000억원 손실이 예상됐지만 국민연금은 “결국 국민에 이득이 될 것”이라며 이 부회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덕분에 ‘제일모직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삼성물산 → 제일모직’의 순환출자 구조가 삼성물산(삼성물산+제일모직) 한 곳이 모든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로 바뀌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 20년 넘게 진행된 이건희 체제에서 이재용 체제로의 권력 이양작업은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 부회장과 그의 가족은 이 과정에서 그룹의 경영권을 확고히 하는 등 수조원대의 이득을 봤지만 그만큼 시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은 이익을 놓치거나 손해를 입었다.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이 건으로 특검에 이미 구속됐다. 문 이사장은 보건복지부 장관 재직 시 국민연금에 삼성 합병 관련 찬성표를 던지도록 압박했다. 특검은 박 대통령이 삼성 합병을 지원하도록 당시 문 장관에게 지시하면서 그 대가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자리를 제시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내 임기 내에 삼성의 지배구조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한 정황도 포착했다. 특검은 삼성이 그동안 최순실씨와 그의 딸 정유라씨에게 지원한 것도 밝혀냈다. 삼성은 2015년 8월 최씨 가족의 독일 페이퍼컴퍼니와 220억원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맺고 35억원을 송금했다. 43억원을 들여 정씨에게 비타나 등 명마를 제공하고,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운영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도 16억원을 후원했다. 최씨가 배후인 미르·K스포츠 재단에는 204억원을 출연했다.

 

이 부회장은 이 모두가 자신도 모르게 결정됐고 대가성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믿기 어렵다. 이 부회장의 지시를 받아 삼성이 최씨에게 돈을 줬고, 최씨와 한몸이나 다름없는 박 대통령이 대가로 이 부회장의 민원을 들어줬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한국 최고의 금수저 출신인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은 지난 3년여 동안 서로 특혜와 대가를 주고받으며 잘 지내왔다. 40~50년 전 박정희 대통령과 이병철 회장이 해왔던 방식이다. 재계는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 삼성그룹 전체가 타격을 받고 경제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한다. 늘 나오는 레퍼토리다. 그러나 그동안 재벌 총수 구속 사례가 많았지만 그 때문에 망한 기업은 없다. 투명경영에 대한 기대감으로 오히려 기업 가치가 더 오를 수 있다.

 

이 부회장은 지금이라도 진실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것이 시민과 주주에 대한 예의이고, 추락한 삼성의 신인도를 올리는 길이다. 국회도 그동안 마련한 각종 재벌 개혁 관련 입법을 서둘러 지긋지긋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