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는 지난 13일(현지시간) 발표한 반기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을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했다. ‘환율조작국’ 지정을 우려했던 한국 정부는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하지만 미국 재무부는 예년과 달리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수출의존도가 높아 환율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한국 정부로선 적절한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 수위를 정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됐다. 미국 재무부는 매년 4월과 10월 교역상대국의 환율조작 여부를 조사한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한다. 한국은 미국 기업 투자 제한, 조달시장 진입 금지 등의 제재를 받는 환율조작국으로 분류되지는 않았지만 2016년 이후 5차례 연속 관찰대상국 리스트에 올랐다.

 

미국은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한국 정부에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구체적으로 공개할 것을 요구해왔다. 달러 매입·매도 금액은 물론 시점까지 모두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1962년 외환시장 문을 연 이후 한번도 개입 내역을 공개한 적이 없다.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지만 ‘미세조정’을 하는 선에서 일부 허용되는 측면이 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미국이 한국에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를 압박하고 나선 것은 대규모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환율 공세의 칼자루를 쥐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요구를 탓할 수만은 없지만 문제는 공개 범위다. 미국·영국·일본 등은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분기 또는 월 단위로 매수와 매도 규모만 공개하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이 한국에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상세하게 공개하라고 압박하는 것은 지나치다. 환율주권 침해 행위로 볼 소지도 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오는 19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춘계회의에 참가해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에 대한 협의를 마무리짓는다고 한다.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가 불가피하다면 말레이시아·싱가포르·베트남 등처럼 6개월 단위로 순매수 내역만 사후에 공개하는 등 현명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환율주권을 지키면서 외환시장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