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입만 열면 규제 완화다. 경제가 살아나려면 규제를 풀어 기업 투자를 끌어내야 한다는 논리다. 그는 “경제활성화를 위한 주요 법안 처리를 외면하는 것은 국민에게 죄를 짓는 것과 같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어제 국회 시정연설에서 “규제를 철폐하고 민생을 살리는 법안을 조속히 처리해줘야 정책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면서 여야의 협조를 당부했다. 언뜻 들으면 규제가 한국경제를 망치는 만병의 근원처럼 들린다. 과연 실상은 어떨까.

세계은행이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자료를 내놨다. 189개국을 상대로 조사한 기업환경평가 결과다. 세계 어느 나라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인지를 조사한 결과다. 이를 보면 한국은 세계 5위로 평가됐다. 창업과 건축 인허가, 자금 조달, 통관행정, 세금, 퇴출에 이르는 기업활동 전 과정을 평가한 수치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3위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성적표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 만큼 수출대기업에 주된 혜택이 집중된 결과이기도 하다.

지난 4월10일 열린 한국남동발전의 중소기업 규제개혁 토론회 (출처 : 경향DB)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불필요한 규제가 있다면 응당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막연히 경제 활력이 떨어진 이유를 규제 탓으로 돌리는 것은 책임 회피이자 국민 기망행위다. 얼마나 더 풀어야 규제 타령이 없어질 것인가. 정부가 목을 매고 있는 경제활성화 법안만 봐도 허망하기 그지없다. 분양가 상한제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없앤다고 계획에 없던 투자가 늘어날까. 천만의 말씀이다. 학교 옆에 관광호텔을 짓겠다는 관광진흥법 역시 특정 대기업을 위한 민원 해소용일 뿐이다. 이번 세계은행 조사에서도 한국의 건축 인허가 규제는 세계 12위로 나왔다. 모든 게 규제 탓이라는 정부의 변명이 무색하지 않은가.

요즘 기업 환경이 여의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투자처를 찾지 못한 단기 부동자금이 사상 최대인 750조원을 웃돌고 있는 데다 올 상반기 1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이 300조원을 넘어섰다. 대기업 금고에 돈이 쌓이는 것은 규제가 아니라 마땅한 투자처가 없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아무리 규제를 푼다고 한들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부가 대기업의 투자를 독려하고 경제활성화를 위한 재계의 협조를 구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판에 박힌 규제 타령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자기 할 일은 팽개친 채 남 탓으로 일관하는 것은 실력 부족을 자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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