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구상한 성장전략의 축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이다. 새 정부는 출범과 함께 정책 진용을 갖추어가면서 새로운 공정거래정책, 최저임금 지원 정책, 부동산정책 등을 내놓으면서 불평등 축소와 총수요 진작의 방향을 가다듬는 중이다. 그러나 과학기술 및 산업정책 관련 인사가 표류하는 가운데, 혁신정책의 골격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중에 북한의 6차 핵실험, 한국의 사드 배치 완료 등 가파른 정세 변화가 진행되었다. 이는 그간의 성장 환경이 결정적으로 변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막 출발 단계에 있지만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의 내용과 배열에 대한 큰 그림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지난 4월의 전쟁 위기설은 무사히 지나쳤다. 그러나 북한은 7월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실험, 8월의 단거리·중거리 탄도미사일 실험을 거쳐, 9월3일에는 마침내 6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6차례의 핵실험 끝에 핵보유를 인정받은 점, 다양한 사거리의 미사일 실험 결과를 축적한 점을 감안하여, 북한이 사실상 핵무기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관측이 많아졌다. 이 와중에 정부는 북핵 방어용이라는 논리로 사드 발사대 배치를 완료함으로써 중국과의 대립 구도를 장기화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제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은 이전과는 질적으로 달라지는 단계에 들어섰다. 북미간, 한중간 대립이 더욱 강화되면서, 산업·금융·재정 등 여러 측면에서 새로운 위협 요인이 발생하게 되었다.

 

해운·조선 등 취약 산업의 경쟁력 약화가 가속화되고 중국 투자기업에 대한 압박이 장기화될 것이다. 게다가 한반도 긴장이 심화됨에 따라 글로벌 전자산업이 마비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한국에 불리한 방향으로 전자산업 네트워크를 재편하려는 압력이 생길 수 있다. 글로벌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강화되고, 달러화 또는 엔화 강세로 파급될 수 있다.

 

북한에 대한 강력한 압박 정책과 미국 우선주의의 통상정책의 국제환경은, 한국에게는 재정부담을 증가시키는 요인이다. 한반도 주변의 긴장이 고조된 조건에서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하지 않는 대신 새로운 양보를 얻어내려 할 것이다. 또한 벌써부터 미국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 한국과 일본에 고성능 첨단무기 판매를 확대하는 방안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내년 국방예산을 지난 9년 이래 최대 증가치인 6.9% 증액한 바 있다. 지금 추세라면 군비 부담이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북 핵실험과 사드 배치는 기존의 동아시아 지역질서 및 한국의 성장체제에 구조변화의 압력을 가할 것이다. 이에 따라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이 더욱 긴밀히 연계된 진화적 경로를 찾을 필요가 있다.

 

우선 담론적 차원에서 소득주도성장론을 보완하여 보다 대중적인 언어로 재가공하는 것이 좋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임금주도성장론을 한국적 상황에 응용한 개념이다. 그러나 일반 시민 입장에서는 이 용어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 흔히들 소득이나 일자리는 정책 결과이지 정책수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평이하게 케인스주의에서의 수요확대라고 하면 오해가 적을 것 같다.

 

총수요증대를 통한 성장, 그 중에서도 임금과 중소기업·자영업 이윤 증대에 주력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경제전략이다. 그러나 이 전략이 일시적 충격요법을 넘어 지속적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생산성 증대를 가져오는 구조혁신을 병행해야 한다.

 

중소기업·자영업·노동·농업 등이 재정지출과 연결되는 지점에서 부패와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는 부분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시스템 개선 없이 당장 눈앞의 소득문제나 가격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면,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사회가 된다. 재정투입은 지역혁신 작업의 속도와 구체화 정도에 맞춰 이루어져야 한다. 지역 차원에서 사회혁신과 혁신성장을 함께 추진하는 거버넌스를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북핵 이후의 압박 국면은 총수요 확대에 불리한 해외환경을 만들어냈다. 중국과의 사드 갈등, 미국과의 한미 FTA 갈등은 기존의 성장방식에 매우 위협적인 요인이다. 북핵 및 사드 배치는 기본적으로 북미, 미중간 게임의 성격이 강하다.

 

문 대통령이 한러 경협에 힘을 쏟고 있지만, 중국·북한으로의 길이 막힌 북방협력은 구조적 결함이 있다. 적대 구도가 상대적으로 약한 일본·동남아·인도 등 남방 쪽으로 산업·군사 협력의 네트워크를 열어야 한다. 일본과 지정·지경학적 측면에서의 이익 공유의 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임기응변 또는 관변향배(觀變向背)와 함께, 남방협력을 강화하는 외교·국방혁신을 생각할 때다.

 

<이일영 | 한신대 교수·경제학>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