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48년 전인 1970년 11월13일. 평화시장 봉제노동자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해설’을 품에 안고 몸에 불을 붙였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을 발판 삼아 그동안 많은 제도적 발전이 이뤄졌지만 노동해방의 그날은 아직 멀다. 도리어 노동을 기피하며 투기적 욕망은 커지고 있다. 폭등하는 집값과 사라지는 일자리에 점점 더 많은 서민들이 아무리 일해도 가난해지는 ‘워킹 푸어’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을 리는 만무하다. 13일 서울 청계천 수표교 근처 전태일 기념 노동복합시설 공사장. 가림막에 붙은 ‘노동존중특별시 서울’이란 슬로건은 현실과 괴리된 채 공허했다.

 

참혹한 노동자의 현실을 분신으로 알렸던 청년 전태일의 기념관 바로 건너편에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최후의 거처’였던 불탄 국일고시원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9일 새벽 고단한 잠을 덮쳤던 화마에 그을린 간판에는 ‘최신 시설, 호텔식 원룸’이란 광고문안이 선명했다. 외줄기 통로와 다닥다닥 붙어 있는 2평 남짓 방들의 비루함은 전혀 다른 이름으로 치장됐다. 유리창이 떨어지지 않은 창틀이 직각으로 열려 있었다. 창은 가난한 이들의 숨구멍이자 탈출구였다. 삶과 죽음을 가른 것은 4만원이었다. 창문이 있는 방은 32만원, 없는 방은 28만원이라 했다.

 

화재가 있던 그날. 문재인 대통령은 신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을 내정하고, 청와대 정책실장에는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을 임명했다. 정권 출범 이후 1년5개월여간 지속돼 온 문재인 정부 1기 ‘경제 투톱’인 김동연 부총리·장하성 정책실장이 동시에 퇴장했다.

 

권력 최상층부의 인사와 가난한 밑바닥 서민들의 죽음은 그날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점차 다른 ‘대접’을 받을 것이다. 2기 경제팀의 정책과 발언은 직을 내려놓을 때까지 실시간으로 비판이나 격려의 대상이 된다. 반대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이들을 위한 정책적 과제들은 시나브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2년 전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 숨진 김모군(당시 19세)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제2, 제3의 김군은 계속 이어졌다. 지난해 말 제주의 한 특성화고 졸업반 이민호군(18세)은 생수 공장에서 현장실습 중 사고로 숨졌다. 고시원 화재 역시 지난해 12월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와 올 1월 밀양 세종병원 참사를 계기로 지난 4월 국가안전대진단을 실시한 지 반년 만에 일어난 화재참사였다.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市內(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시인 이성복은 ‘그날’에서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과는 무관하게 잘도 돌아가는 현실을 그렸다. 오늘도 그날은 계속되고 있다.

 

그 무심함을 직업으로 맞닥뜨리는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는 참사가 있기 몇 시간 전, 그 전날 밤 JTBC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언론에도 가끔 터져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게 간혹 터지는 얘기가 아니라고요. 매일매일 세월호가 터진다고 보시면 돼요. 단지 보이지 않을 뿐이에요.”

 

사회 취약계층이 주된 환자인 외상외과의 현실을 기록한 그의 책 <골든아워>에 깔린 고독과 허무의 문장은 말 속에도 그대로 녹아 있었다. “기존에 했던 관행이나 그런 것들을 뚫고 나가는 모습들이 필요한데 한국 사회의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원하지 않는 것 같아요. 다친 사람만 억울한 거예요. 소위 말하는 블루칼라 노동자, 그런 분들만 집중타를 맞아요. 그런 분들은 정작 이런 걸 얘기할 수 있는 통로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세요. 그러니까 불합리하게 조치를 당해도, 그냥 그렇게 해서 생명을 잃어도 그런가 보다 한다고요.”

 

지금껏 한국 경제의 지상과제는 가난을 벗어나 잘살기 위한 성장이었다. 성장을 위해서는 불평등과 빈부격차도 심지어 가난하고 이름 없는 이들의 죽음도 모른 척해 왔다. 그러나 지금 그러한 불평등과 격차, 죽음을 안고 성장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고 있다. 가장 보수적인 기구의 하나인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수년 전 불평등의 증가가 경제성장을 저해한다고 진단했다. 우리는 최근에야 ‘국민 단 한 명도 차별받지 않는 나라’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를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정책추진에도 경제 상황은 나빠지고 산업경쟁력 역시 떨어지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과거의 정책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2기 경제팀은 그래서 중요하다. 청와대는 “정부 철학과 정책기조의 연속성을 이어가면서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를 힘있게 추진할 수 있는 실행력과 정책조율능력”을 인선 배경으로 설명했다. 경제운용의 안정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사람만이 아니라 정책까지 바뀔 수 있다. 그것은 촛불민심에 대한 배반이다.

 

<박재현 산업부장>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