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어둠을 빨아들이는 달과 반짝이는 별들. 우주는 우리에게 아직 신비의 존재이지만 미국에서는 새로운 미래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지난달 26일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뉴 스페이스 2018’ 콘퍼런스에서 제프 피이게 우주프런티어재단 이사장은 “5년 전 10개뿐이던 우주 산업체가 이제 1000여개로 늘어났다”며 “우주시장은 1조달러 시장으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 기업들이 천문학적 규모의 시장을 향해 뛰어들고 있다. 그 중심에 세계 최대의 유통 공룡 ‘아마존’을 설립한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과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가 있다. 이 두 회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미 항공우주국(NASA)도 해내지 못한 재사용 로켓 개발에 성공하며 우주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언론은 베이조스와 머스크, 블루오리진과 스페이스X의 경쟁을 ‘스타워즈’에 비유하기도 한다. 자존심 대결도 뜨겁다. 실제로 블루오리진이 최초로 2015년 지구 상공 100㎞까지 올라가는 우주관광용 로켓(뉴 셰퍼드)의 재사용에 성공하자 머스크는 “우주(space)와 궤도(orbit)의 차이를 명확히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트윗을 날렸다. 기술 수준이 스페이스X보다 못하다는 의미였다. 한 달 뒤 머스크는 더 멀리 날아가는, 기술적으로 더 고난도인 대형 로켓(팔콘-9)의 재활용 실험에 성공했다. 이에 대응이라도 하듯 베이조스는 아마존 주식을 팔아 1조2000억원의 자금을 블루오리진에 투자하기로 했다.

 

이처럼 기업의 경쟁은 ‘자존심 대결’을 넘어 기술을 발전시키고 시장을 확대시킨다. 세상은 라이벌의 경쟁에 주목하고 때로는 열광한다. 이는 자본시장의 투자로 이어진다.

그러나 눈을 국내로 돌리면 정반대의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 항공업계의 라이벌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보기에도 민망할 만큼 비슷한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땅콩회항’으로 승객의 불편을 초래하더니 이번에 사상 초유의 ‘기내식 대란’이 일어났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자녀와 부인의 ‘갑질’로 곤욕을 치르더니 이번에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아무 경험 없는 40세 딸을 별안간 계열사 상무로 임용해 구설에 올랐다.

박 회장은 이를 사과하는 기자회견에서 “(딸에게) 인생 공부, 경영 공부를 시키려는 것이니 예쁘게 봐달라”고 했다. 모두 회사를 사유물로 여기는 재벌체제를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그동안 항공시장의 적폐를 묵인·방조하거나 독점이익을 보호해준 정부의 책임도 빼놓을 수 없다.

 

재계의 라이벌 의식도 점차 흐려지고 있다. 삼성과 LG는 30년 넘게 상대방을 라이벌로 인식해왔고 그 라이벌 의식이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삼성의 반도체와 휴대폰 사업이 커지면서 둘의 라이벌 경쟁도 예전 같지 않다.

 

현대차는 과거 라이벌이라 할 수 있던 기아차를 인수해 국내 최대의 국산 자동차 메이커가 됐다. 시장점유율에서 GM, 르노삼성, 쌍용차는 현대·기아차의 라이벌이 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현대·기아차는 소비자들의 비난에도 새 모델을 내놓을 때마다 가격을 대폭 올렸다. 이동통신 분야가 경쟁이 심하다지만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는 시장점유율이 5 대 3 대 2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않고 있다. 경쟁을 하는 게 아니라 시장을 나눠먹고 있는 셈이다.

 

경쟁이 사라진 자리에는 기업 간 담합과 약자의 이익을 강탈하는 지대추구가 자리 잡는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교수는 지난달 경향포럼에서 “한때 메이커(부의 창출자)였던 대기업 등이 테이커(부의 강탈자)로 변모하는 행태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의 근저에는 ‘황제 경영’과 ‘기업 세습’이 자리 잡고 있다. 기업 경영권을 선대로부터 물려받는 상황에서 경영 능력은 장식품에 불과하다. 경영에 실패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게다가 재벌체제가 3·4세로 내려가면서 그들만의 철옹성은 더 견고해지고 있다. 나이 40에 상무에서 LG그룹의 총수가 된 구광모 회장은 책임경영을 하겠다면서도 주주와 직원들에게 어떻게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줄지는 밝히지 않았다. 게다가 ‘장자 승계 원칙’이 그룹 경영 안정화에 좋은 모범으로 치장되고 있는 건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지난 2월 뇌물공여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 비전도 명확하지 않다. 그저 회사 관계자들에 의해 ‘윤색’돼 간접적으로 전달된 이미지뿐이다. 해외 출장을 다니고 있으니 글로벌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건 논리적 비약이 심하지 않은가.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기업은 이류, 행정은 삼류인데 정치는 사류”라고 했다. 지금은 정치와 행정은 ‘촛불혁명’ 이후 한 단계 도약하려는 시늉이라도 하지만 재벌 경영은 예년 수준이다. ‘재계의 라이벌’이라는 자존심 대결이 부활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재현 산업부장>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