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봉하마을에서 자그마한 쌀봉투 하나가 추석 선물로 왔다. 이래저래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휴대폰 팔아 쌀 사먹으면 된다.” 이 얘기를 참여정부의 경제관료 입에서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세계무역기구(WTO) 문제로 후보 시절부터 농업정책에서는 욕을 많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그에게 우호적이던 농민단체들마저 등을 돌렸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퇴임 후 우렁이 농법 등 친환경 농업에 힘을 기울였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 농민들의 인기를 등에 업은 것이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기억한다. 한·미 FTA 논쟁 국면에서 그는 농업대책에 관한 강도 높은 발언을 종종 했다. 객관적으로 따지면 지난 대선, 야당 쪽의 농업공약은 별 게 없었지만 나름 박근혜 쪽에서는 이것저것 근본적으로 고민한 흔적이 보였다.

약간 뜬금없어 보였지만 하여간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그는 2017년까지 로컬푸드 매장을 120개로 늘리겠다는 약속을 했다. 미국에서 저소득층에 대한 생활지원으로 주로 활용되는 푸드 스탬프와 다양한 직불제 역시 그의 캠프에서 검토되었고, 여전히 검토 중이라는 ‘전설’ 같은 얘기들이 떠돌아다닌다. 노무현 대통령 이후 지난 몇 개의 정부를 거치면서 나름 농업에 대해 괜찮은 얘기를 한 사람으로는 박근혜가 거의 유일한 것 같다.

대통령의 농업정책은 거의 편법에 가깝도록 일방적으로 추진된 쌀관세화가 한 축을 형성한다. 한·중 FTA 등 연속되는 ‘동시다발적 FTA’는 한국 농업에 궤멸적 타격을 줄 위험성이 있다. 또 다른 축으로는 로컬푸드가 존재한다. 지역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시키면서 지역 농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로컬푸드 정책은 분명 쌀관세화와는 다른 방향이다.


지금 한국의 소비자들은 식용유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제품들이 유전자변형식품(GMO)인가 아닌가,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정부에서는 그냥 믿고 먹으라고만 하는데, 정부 내에도 GMO를 미래산업 심지어는 창조산업으로 포장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냥 믿고 있기에는 맘이 편하지가 않다.

박근혜의 농업,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이 시점에서 한 번 차분하게 질문해보고 싶다. 후보 시절, 어쨌든 애잔하게 가지고 있는 농업에의 애정을 그는 아직도 가지고 있는가? 오랫동안 한국 농업정책의 한 축을 담당해온 농촌경제연구원은 이제 나주시로 내려간다. 오랫동안 정책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옷을 벗는다. 금융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고위급 경제관료 김석동이 대표로 있던 농협경제연구소는 아예 문을 닫는다고 한다. 농업 쪽의 시민운동도 10년 전에 비하면 힘이 확실히 줄었고, 노령화로 고생하는 농민단체도 정부의 흐름을 바꾸기는 어려워졌다. 현장에서, 박근혜 시대의 농업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이미 판단을 한 듯하다.

임기 중간도 안된 대통령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다. 농업의 현주소를 어떻게 생각하고, 한국의 농업을 남은 임기 동안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가? 농협이 지금 그렇게 하듯 농업 철수인가 아니면 농업 강화인가? FTA 체결 때 약속했던 그 농업대책은 앞으로 어찌 되는 것인가? 철수냐, 강화냐, 과연 어느 쪽인가?


우석훈 | 영화기획자·경제학 박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