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박근혜 대통령의 기자간담회는 마치 삼성그룹 대변인 브리핑을 듣는 것 같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일 “삼성 같은 우리나라의 대표 기업이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아 합병이 무산되면 국가적, 경제적으로 큰 손해라는 생각으로 국민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지원 의혹을 해명하면서다. 그는 합병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증권사 20여개에서도 한두 군데 빼고는 (합병을) 다 해줘야 된다는 분위기였다”고도 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작업이다. 박 대통령은 이 본질은 외면한 채, 미국계 헤지펀드로 양사의 합병 비율을 지적했던 엘리엇을 탐욕에 가득한 투기꾼처럼 언급하며 애국심을 자극한 셈이다. 정부가 자본시장을 외국인에게 활짝 열어놓고도, 국내기업과 외국자본 간 대결구도로 몰아가는 이중성이다. ‘글로벌 기업’ 삼성이 외국 자본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줘야 할 대상인가. 한 정부 관료의 표현처럼 “자본이 자본을 공격하는 게 자본주의”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첫날인 1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출입기자단과 신년인사회를 겸한 티타임을 갖고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뒤 청와대 참모진과 탄핵심판 대리인단 외에 외부인을 만나는 것은 23일 만이다.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박 대통령 말대로 두 회사의 합병 과정에서 증권사 22곳 중 21곳이 합병안에 찬성하는 리포트를 냈다.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던진 자산운용사도 없었다. 절차적으로는 하자가 없다. 정말 그런가.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한 합병비율에도 국민연금을 비롯해 삼성물산 주식을 더 많이 갖고 있던 기관들은 왜 찬성표를 던졌나. 기관들이 주주와 투자자를 위해 찬성했다고 보는 것인지, 자금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입장에서 삼성 계열사들과의 관계를 의식해 내린 결정이라는 증권가의 수군거림이 들리지 않는 것인지 박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국민연금이 수천억원의 평가손실을 입고 만신창이가 된 상황에서 “올바른 정책 판단”이라 말하는 정신력이 놀라울 뿐이다. 옥스퍼드 사전은 2016년을 대표하는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꼽았다. 2017년이다. 이젠 진실을 알고 싶다.

 

이주영 기자 young78@kyunghyang.com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