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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5일이 돌아오면 텔레비전에서 단골로 방영되는 영화가 있다. 2010년에 제작된 <포화 속으로>다. 이 영화는 1950년 8월11일 새벽, 학도병 71명이 인민군 766 유격대대의 공격을 11시간 반 동안 막아낸 포항여중 전투를 그리고 있다. 71명 중 전사 47명, 부상 6명, 실종 4명이었으니 거의 전멸한 셈이나 다름없었다. 불과 2개 소대의 학도병들이 장갑차와 기관포,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대대급 정예 유격부대에 맞서, 옥(玉)처럼 부서질지언정 한 걸음의 후퇴도 거부한 채 끝까지 싸운 처절한 전투였다.

전쟁기념관 홈페이지는 다음과 같은 말로 그날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실탄이 소모되자 학도병 한 명이 실탄창고의 문을 부수고 그 안에 남아있는 실탄과 수류탄 약간을 가져와 게속 사격하였으나, 얼마를 지탱하지 못하고 실탄이 바로 바닥나게 되었다. (중략) 이제 맨주먹이 된 학도병들은 적의 수류탄을 받아 던지는 혈전을 전개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들이 사투를 벌이는 동안 포항 시민과 피란민 약 20만명은 형산강 이남으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고 후방의 국군도 반격을 위한 전열을 정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낙동강 방어선은 동해안 전선부터 붕괴되었을지 모른다.

 

영화 ‘포화속으로’ 포스터

<포화 속으로>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옥에 티’가 하나 있다. 주인공 권상우와 탑을 비롯한 학도병 역할의 배우들이 하나같이 경상도 말씨만 쓴다는 점이다. 국회도서관에는 1957년 중앙학도호국단이 편찬한 <전몰학도명단(戰歿學徒名單)>이란 책자가 보관되어 있다. 이 책자는 산화(酸化)방지를 위한 화학처리를 거쳐 상자에 밀봉돼 있기 때문에 일반인은 열람을 할 수가 없다. 다만 PDF 사본은 국회도서관이나 구립도서관에 가면 인터넷으로 볼 수 있고 출력도 가능하다.

 

이 책자에는 전몰 학도병 1394명 각각에 대해 이름과 출정연월일, 전몰연월일, 출신학교, 출정당시 학년, 전몰지구, 최종계급, 본적, 주소, 유족대표 등 11가지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이들 가운데 전몰지구가 포항이며 전몰일자가 포항여중 전투가 벌어진 1950년 8월11일과 그 전날인 8월10일인 사람들을 헤아려 보았다. 모두 23명이었다. 본적지가 서울인 사람이 3명, 평양 등 북한 지역이 3명, 충북 1명, 경상도 7명, 전라도가 9명이었다. 전몰날짜가 그냥 8월이라고만 적혀있는 전북 출신의 포항 전몰자도 28명이나 되었다. 그들 가운데는 포항여중 전투에서 전사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포화 속으로>의 제작자는 포항에서 벌어진 전투였으니 학도병도 모두 경상도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경상도 말씨뿐 아니라 서울, 충청도, 이북 말씨도 나왔어야 한다. 전라도 말씨는 ‘더 많이’ 나왔어야 한다. 고증을 좀 더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1가지 정보에는 적지 않은 사연이 담겨 있다. 출정 당시 한영중학교 3학년이던 김태연은 1953년 2월28일 전남 백운산 전투에서 전사했다. 주소지는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암사리로 되어 있다. 지금의 서울 강동구 암사동이다. 내가 사는 강동구 고덕동이 바로 옆 동네다. 이웃 동네 중학생이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종전을 몇 달 앞두고 전사한 것이다.

 

배재고등학교 김문호는 포항여중 전투에서 전사했다. 본적이 ‘중구(中區)’로만 되어 있을 뿐 출정당시 학년도, 주소도 비어 있었다. 배재고등학교는 나의 모교다. 몇 년 전 나는 동문 회장님을 통해 교장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교무실 선생님 입회 아래 6·25 이전에 입학한 학생들의 학적부를 열람한 적이 있었다. 김문호 선배의 학적부도 보존되어 있었다.

 

그는 평안북도 선천군 산봉면 사람이었다. 배재고등학교가 있던 중구 정동 근처인 중구 남산에서 가족과 살던 서울 유학생이었다. 중학교 6학년 성적란에는 ‘六·二五(육이오) 動亂(동란)□□하여 第六學年(제육학년) 成績(성적)은 없음’이라는 희미한 푸른색 고무도장이 찍혀 있었다. 1946년 배재중학교에 입학할 때 찍은 것인 듯 빛바랜 증명사진도 붙어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동그란 얼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사람이었다.

 

원칙적으로 참전하지 말았어야 할 어린 소년들이었다. 국방부도 6·25 발발 한달 뒤 7월 말에는 소년병들에게 귀가를 명령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포항여중 전투의 71명은 자발적으로 참전했던 사례였다. 나라를 지키려던 이들의 안타깝고도 고귀한 희생을 아아! 어찌할거나? 어찌할거나? 6월을 맞이해 이 글을 통해서나마 김문호 선배를 비롯한 전몰 학도병 모두의 영령에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한다. 삼가 명복을 빈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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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