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했다. 선고 이후 한두 달 사이에 나라와 경제의 명운이 결정될 것 같다. 민주적 헌정체제라는 제도환경은 경제발전에 관건적 요소다. 향후 보수정당의 향배가 매우 중요하다. 이들이 헌정을 지지하는 축이 되면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리더십과 제도 협약이 만들어질 수 있다. 합리적 보수가 무너지면 법치와 경제성장의 기반이 함께 무너질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옹위를 앞세운 세력은 1987년 마련된 헌정체제 밖으로 뛰쳐나가고 있다. 이들은 촛불집회, 국회, 헌법재판소, 특검, 언론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퍼붓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집권 이래 대결의 정치적 프레임을 통해 권력을 행사해왔고 탄핵심판 과정에서도 대중을 동원하여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려 하고 있다. 대통령 측 대리인은 헌재 재판정에서조차 시가전, 내란, 피와 눈물로 덮인 아스팔트를 언급한 바 있다. 영국의 크롬웰 혁명에서 100만명 이상이 죽었다는 사례를 거론하기도 했다.

 

극우 정치세력 결집을 도모하는 이들은 백색테러와 계엄령 등 쿠데타를 공공연히 선동하고 있다. 이들이 한국 보수세력의 심장을 장악하게 되면, 헌정체제의 한 축이 흔들리게 된다. 헌정에 합의한 협약이 무너지면, 현재의 위기와 미래의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할 국가적 리더십을 기대할 수 없다.

 

근대 선진국은 민주주의 헌정이라는 제도 협약을 통해 산업발전의 기반을 만들었다. 유럽의 후진국이었던 영국은 17세기 말 시민혁명을 통해 국왕 및 엘리트의 자의적 권력을 제약하는 정치·사회적 협약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먼저 산업혁명을 수행하고 근대 세계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국의 헌정체제가 순탄하게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16세기 후반 튜더 왕가의 엘리자베스 1세는 변방의 잉글랜드가 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중도적이고 온건한 종교정책을 시행하고 대륙의 강자였던 스페인을 견제했다. 그러나 그를 이은 스튜어트 왕가는 중도노선에서 벗어나 왕권을 강화하고 의회와 충돌했다.

 

1642~1651년에는 왕권파와 의회파 간 3차례의 내전이 벌어졌다. 마침내 1688~1689년에는 전제왕권을 추구하던 제임스 2세가 축출되었다.

 

이때 국왕과 대립하던 휘그당, 왕권을 지지하던 토리당, 네덜란드에서 군사력을 몰고 온 왕위계승자 사이에 타협과 연합이 이루어졌다. 이때 제정된 권리장전이 영국 헌정체제의 골격이 되었다. 이후 영국에서의 권력 균형은 60여년 계속되었다. 이때가 영국이 최선진국으로 발돋움한 결정적인 시기였다. 이때 영국은 유럽 대륙의 절대주의 체제에 비해 훨씬 강력한 국가제도를 갖출 수 있었다. 그때까지 영국보다 훨씬 강력했던 스페인과 프랑스는 역사의 갈림길에서 다른 길을 걸었다.

 

스페인은 대항해시대의 강자로서 16~17세기 황금기를 누렸다. 그러나 무력과 종교적 획일성에 기초한 제국은 내적으로 통합되지 못하고 서서히 와해되어갔다. 불규칙한 왕위계승 과정에서 절대주의 국가의 헤게모니는 변동할 수밖에 없었다. 17세기 말 영국혁명 당시에는 프랑스 절대왕정이 유럽의 헤게모니 국가였다. 그러나 프랑스 절대왕정의 자의적·절대적 권력은 재정안정과 산업발전의 기반을 침식했다. 18세기 후반에는 프랑스의 재정은 파산상태에 이르렀다. 이후 프랑스는 피바람 부는 대혁명의 길로 갔다. 영국은 헌정의 기반 위에 산업혁명과 세계제국의 길로 갔다.

 

민주적 헌정체제는 경제성장과 산업발전을 가능케 하는 제도환경이다. 영국은 헌정을 통해 비토권을 가진 참가자를 체제의 일원으로 포섭했다. 이로써 국가의 자의적이고 기회주의적인 행동이 발생할 환경이 제한되었다. 영국은 보수파와 진보파가 타협하여 왕권의 자의적 권력을 제한하는 협약인 근대 헌법을 만들어냈다. 근대 헌법의 핵심 축은 주권과 재산권이다. 주권은 공적인 것이며 보편적 의지, 국가, 정치의 영역에 관한 것이다. 재산권은 자원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에 관한 문제로, 개인적인 욕망, 시민사회, 경제의 영역에 관한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두 축은 국정농단과 정경유착이다. 이는 민주 헌정의 주권과 재산권 체계를 유린한 것이다. 이렇게 침탈된 공법·사법 질서는 경제성장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이 2015~2016년 연속 참담한 지경에 이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국가제도와 사회세력이 대통령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용인하고 극우 테러와 폭력의 위협에 굴복하면, 헌정체제는 물론 경제와 산업도 함께 무너진다. 그러면 국가 와해, 대혁명의 카오스 상태가 다가온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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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