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좋지 않다. 경제운용시스템이 낡았기 때문이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만들었던 정부 중심, 지시 위주, 불균형 성장의 시스템이 시대에 뒤졌기 때문이다. 고물 자동차는 가속페달을 밟아도 속력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차가 망가진다. 운영체제(OS)를 업그레이드해야 컴퓨터도 제대로 작동한다. 경제도 같다. 북한이 아무리 고난의 행군을 하더라도 경제는 좋아지지 않는다. 시스템이 최악이기 때문이다.

 

일자리 문제를 보자. 일자리를 늘리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고용주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용주는 사업이 어려워질 때를 걱정한다. 사업이 어려워졌는데도 계속 월급을 주어야 한다면 차라리 고용을 하지 않는다. 파트타임 직원을 쓰든, 비정규직을 쓰든, 파견직원을 쓰든, 관계하지 않아야 일자리가 늘어난다. 브레이크가 있어야 가속페달을 밟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고용주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려면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우선 노동자가 해고되더라도 기본적인 생활은 할 수 있어야 한다. 의미 있는 사회안전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돈 쓰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는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의 지원, 각종 기술개발 지원 등 기업이나 단체, 프로젝트에 돈을 써왔다. 앞으로는 해고 등으로 생활이 어려운 개인들에게 돈을 써야 한다. 산업육성이나 일자리 창출, 기술개발 등은 더 이상 정부가 할 일이 아니고 어려운 개인을 도와주는 일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안전망 구축에 필요한 돈을 마련할 수 있다.

 

고용주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려면 고용주가 아주 공정해져야 한다는 전제도 필요하다. 자의적으로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고통을 주면 안된다. 노동자가 고용주에게 아부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정한 법 집행을 위한 사법개혁이 필요하다. 고용주가 잘못하면 예외 없이 처벌받아야 하고 권력과 가깝다고 그냥 넘어가면 안된다. 재벌 등 기업경영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기업이나 노동자의 이익보다 오너 패밀리의 이익을 우선하는 기업운영 방식이 지속되는 한, 고용주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경제활동을 자유화하는 것이다. 비즈니스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일자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경복궁 옆에 호텔을 지으려고 했던 기업이 있었다. 이를 허용하면 일자리가 늘어난다.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해도 일자리는 늘어난다. 블록체인 ICO를 허용해도 일자리는 늘어난다. 그런데 모두 못하게 하면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다. 원전을 못 짓게 하면 수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진다.

 

경제자유화를 하기 위해서도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법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국회의 협조가 필요하다. 오너 패밀리 이익 우선의 기업경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규제를 완화하면 기업주에게만 과도한 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 규제완화도 재벌 등 기업경영이 변해야 제대로 추진할 수 있다. 감사원도 바뀌어야 한다. 현재 감사원은 일하는 공무원을 감사한다. 일하지 않으면 감사원 감사를 받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일하지 않는다. 중국에서 할 수 있는 비즈니스를 못하게 하는 정부 부처와 담당공무원을 문책하고 집중적으로 감사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공무원들이 규제완화에 나설 것이다.

 

이렇듯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단순히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폐기한다고 해서, 기업의 잘못에 눈감고 기를 살려준다고 해서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약간의 도움이 될 뿐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정부 지출 방식을 개혁해서 의미 있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공정한 법집행을 위해 사법개혁을 하고 재벌 등 기업의 경영 방식도, 감사원의 감사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이런 개혁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일자리 문제가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경제 문제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지방선거로 정부·여당의 기반이 더 공고해졌다. 시스템을 개혁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개혁과제들을 개별적으로 접근하면 진영 간 싸움만 하게 되어 있다. 서로 얻을 것과 양보할 것을 동시에 협상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한다. 법 개정을 위해서는 국회의 도움이 필요한 만큼 중도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정당과의 연정은 큰 의미가 있다. 연정을 할 경우 먼저 시스템 개혁을 위한 정책내용을 연정합의서에 담아야 한다. 그리고 서명을 해야 한다. 정치공학적인 연정이 아니라 시스템 개혁 내용에 합의를 하고 이를 추진하는 연정이 되어야 한다.

 

<변양호 |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