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나 KT처럼 오너가 없는 소유분산 기업은 전문경영자가 경영하는데,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칠 때가 많다. 그래서 전문경영이 반드시 오너경영보다 효율적인 게 아니라면서 기업지배구조에는 정답이 없다고 주장하는 논거가 되곤 한다.

 

주주가 경영자를 감시하려면 비용이 든다. 엘리엇이나 소버린 같은 투기자본이 활개 칠 수 있는 것은 전문가를 채용해 기업 약점을 찾아내는 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이다. 일반 소액주주는 경영감시에 드는 이런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더욱이 경영감시는 일종의 공공재다. 즉 어떤 소액주주가 경영감시 비용을 부담해서 기업성과가 좋아지면 주가 상승의 이익을 경영감시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주주들과 같이 나눠 가져야 하기에 소액주주들은 경영감시 공공재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발생한다. 이런 이유로 소유분산 기업은 전문경영자의 경영오류나 전횡이 발생해도 소액주주 경영감시 부족으로 이를 시정하지 못하는 시장실패가 발생한다.

 

서구 선진국들의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실증분석 연구를 보면 장기 투자를 하는 대주주(block shareholder)가 이사회에서 적극적 경영감시를 하는 기업일수록 기업성과가 좋은 것으로 나타난다. 더 나아가서 대주주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기업성과가 좋은 것으로 나오는 연구도 있다. 이것은 대주주의 경영감시 공공재 비용 부담으로 경영오류가 시정되기 때문이다.

 

엘리엇이나 소버린 같은 투기자본을 비판하는 것은 경영감시 비용 부담 목적이 기업의 장기가치를 올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 약점을 이용해 투기적 단기차익을 얻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재벌 가족들은 경영감시 공공재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대주주다. 재벌 가족들이 무리하게 경영권 세습을 감행하고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 편취 불법 행위를 하지 않고 선진국 대기업 후손들처럼 장기 관점에서 이사회에서 대주주로서 전문경영자를 감시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엘리엇이나 소버린 같은 투기자본이 한국에서 활개 칠 기회도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투기자본을 비판하기 전에 투기자본이 공략할 수 있는 한국 상장 대기업의 취약한 체제를 개선하는 것이 먼저 할 일이다. 기업지배구조 개혁의 핵심은 201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유진 파머가 말했듯이 경영과 통제의 분리, 즉 이사회가 최고경영자로부터 독립해서 경영을 제대로 감시하느냐이다. 주주는 이사회를 통해 경영감시 통제권을 행사한다. 그런데 이사회가 주주 이익을 충실히 대변한다는 보장은 없다. 결국 주주가 통제권을 제대로 행사하려면 경영감시 공공재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에 대주주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한국에서 소액주주 운동이 나름 성과를 냈던 것은 참여연대, 경제개혁연대 같은 시민단체가 경영감시 공공재 비용을 소액주주 대신 부담했기 때문이지만, 이런 식의 재벌개혁은 한계가 있다.

 

국민연금은 기업의 장기가치 제고 관점에서 경영감시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최적의 대주주다. 대한항공 재벌 가족들의 기막힌 갑질에서 보듯이 재벌 가족 전횡에 의한 기업 가치 하락과 이런 약점을 노리는 투기자본의 약탈적 행동이 난무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은 가입자 자산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연금사회주의 운운하면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반대하고 국민연금이 시장중립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국민연금이 재벌 총수 전횡을 모르는 척하고 수탁자 책무를 방기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 때 국민연금은 가입자 자산 손실이 예상되는데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여 수탁자 책무를 위반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이 수탁자 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국민연금의 독립성, 투명성을 강화하는 쇄신 방안을 강구해야지 적극적 기업 감시가 아니라 시장중립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비합리적인 주장이다.

 

우선 정부는 국민연금이 수탁자 책무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독립성, 투명성, 책임성, 전문성을 확립하는 조직 쇄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국민연금은 기업 감시 대주주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국민연금 반대의결권 행사는 지금처럼 소극적인 게 아니라 반대의결 사전공시, 의결권대리행사 등을 병행해 주총에서 실제로 반대의결을 관철시켜야 한다. 국민연금은 민간 기관투자가에 비해 이해상충 문제가 작기 때문에 감사·이사 후보 추천, 주주제안, 주주대표소송 등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조영철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