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혁 | KDI 글로벌경제연구소장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나의 소원’을 썼던 1947년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통치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자주독립을 이루지 못한 불완전한 국가였다. 영토와 인구 규모로만 보면 영국과 프랑스에 비견되는 작지 않은 나라이지만, 마치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주변 열강의 각축장이 된 볼품없는 나라였다.

그로부터 60여년이 지난 오늘날, 남북분단으로 인해 여전히 불완전한 국가이긴 하지만, 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은 크게 높아졌다. 엑토르 갈반 전 주한 도미니카공화국 대사가 지적했듯이 개도국에 대한민국은 이제 ‘희망의 얼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G7과 스페인, 브릭스(BRICs) 국가들에 이어 세계 13위 수준의 경제 규모를 갖추고 연간 무역액이 1조달러를 넘는 선진 통상산업국가가 됐다. 정치적으로도 참정권과 민권이 보장되는 민주국가로 탈바꿈했다. 프리덤 하우스의 조사에 따르면, 유신독재 시절 우리나라는 이란, 에티오피아, 캄보디아와 대등한 수준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자유가 크게 신장되어 이제는 서유럽과 북미 수준에 도달하게 됐다. 국력과 국격이 높아짐에 따라 우리나라가 국제무대에서 의제를 설정하고 모범사례를 제시해 다른 나라들의 지지를 받을 기회도 확대되고 있다.

 

G20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한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환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l 출처:경향DB

1990년대 이후 국제 역학관계의 변화도 우리나라가 국제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을 넓혀 주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11%밖에 되지 않는 G7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만 해도 65%에 이르렀지만, 2010년에는 50%로 크게 감소했다. 반면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 강국과 개도국이 국제 경제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기존의 G7 중심 체제로는 무역, 금융, 에너지, 기후변화 등 주요 글로벌 이슈를 다루기 어렵게 됐다. 이처럼 화하는 국제 역학관계에서 우리나라는 개도국과 선진국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며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도움을 줄 국가로 주목받고 있다.

북유럽 국가와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기존의 중견국가들이 주로 인권, 원조, 평화유지 분야 등에서 틈새외교를 펼치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우리 스스로의 사회·경제·정치발전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지 돌이켜보며 개도국과 선진국을 동시에 설득할 수 있는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2010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2011년 부산세계개발원조총회를 통해 선진국과 개도국을 아우르는 국제개발협력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이와 같은 성과가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가 앞으로 가교국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제사회의 많은 도움을 받았던 나라가 국민소득의 0.25%를 공적개발원조(ODA)로 지출하는데 인색하게 구는 것이 옳은 것인지, 기후변화와 통상협상에서 여전히 개도국이라고 강변하면서 다른 선진국과 개도국에는 양보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개구리처럼 이제 선진국이 되었다고 우쭐거리며 개도국의 심정은 헤아리지 못하고 선진국의 첨병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한다는 것은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자기 편한 대로 한쪽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양쪽의 입장을 조율하여 공동선을 만들어간다는 의미이다. 백범이 꿈꾼 아름다운 나라도 이런 나라일 것이다.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