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정부 2년차 막바지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 사망사고는 우리 경제의 부조리와 모순을 응축하여 보여준다. 고 김용균씨는 이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 사회가 어떤 사고의 패러다임으로 경제를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밝혀주는 희망의 촛불이다.

 

우리 노동자 10만명당 산재 사망자수는 OECD 회원국 최상위일 뿐만 아니라 회원국 평균의 5배에 가까울 정도로 월등히 높다. 매년 2000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근무 중 사고로 사망하고, 이런 일은 대부분 100인 미만의 중소사업체에서 발생한다. 불공정한 시장질서, 재벌과 대기업 경제력이 만드는 착취의 먹이사슬, 사회적 약자와 국민을 배반한 정부와 관료집단의 감독부실, 이렇게 발생하는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를 여실히 드러낸다. 어쩌다 이번 사고처럼 국민적 관심사가 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경제성장률이 너무 낮다는 호들갑에 파묻히기 일쑤다.

 

포용적 국가발전이란 시대적 사명으로 출발한 정부의 경제정책, 특히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가 지향하는 구조개혁에 대해 지난 한 해 무차별적 비판이 쏟아졌다. 다수의 비판들은 성장 지향 경제노선으로의 회귀, 재벌 중심의 수출주도형 경제, 그리고 낙수효과를 부르짖었다. 재벌체제로 이미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고 낙수효과는 없다는 게 드러났는데도 이런 사고가 담론을 지배했다. 학계에서도 이해되지 못한 단기적 통계가 섣불리 인용되었고, 정파적 이해로 성급한 결론이 내려졌다.

 

정부의 신년 경제정책 방향을 보면서, 이런 시대착오적 사고의 패러다임 때문에 정책 우선순위가 바뀐 게 아닌가 우려된다. 이제는 정부가 성장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마술을 부린다거나 개발독재정권 식의 정부주도 투자로 단기적 성과를 낸다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지난 정권에서 ‘녹색성장’ ‘창조경제’라는 정책으로 엄청난 예산을 썼지만, 과연 어떤 성과가 있었는가? 결국 이런 미사여구는 슬로건에 불과했고 경제정책의 본질은 무분별한 건설경기 부양과 부동산 투기 붐 조성뿐이었다. 성장률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일차원의 세계는 현실이 아니라 허구일 뿐이다. 모든 국민이 행복한 사회, 지속 가능한 경제발전은 성장률이 그리는 직선 위에 있는 게 아니라 입체적 공간에 놓여 있다.

 

지난 30여년간 우리나라의 소득과 부의 불평등에 대한 연구와 자료들을 종합해보면 우리 경제가 성장한 것처럼 빠른 속도로 소득과 부의 불평등 역시 나빠졌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불평등도의 증가 속도가 우리보다 높았던 나라는 찾기 어렵다. 그 배경에는 극심한 임금 양극화와 높은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있다. 이처럼 장기간 악화된 불평등은 사회계층의 장벽을 공고히 한다. 사회계층상승에 대해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사람들이 지난 10년간 5배 이상 높아졌다. 계층사다리였던 교육은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대학입시에서 계층 간 교육격차가 극명히 드러난다. 재벌과 대기업 중심의 경제력 집중은 기업 활동과 혁신을 통한 성공의 기회, 경제의 계층사다리까지 걷어낸다. 우리 사회는 소수 재벌을 중심으로 관료와 정치인들, 그리고 사회 엘리트들이 담합하고 특권계층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변질되고 있다.

 

부패와 사회적 신뢰에 대한 국제 비교에서 우리는 아직도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부패인식조사에서 100점 만점에 54점, 2017년 한국은 남미만큼이나 부패한 나라로 평가된다. 정부와 관료집단에 대한 사회적 신뢰 역시 OECD 하위권에 머물러 있은 지 오래다. 회계부정과 같은 최악의 시장교란이 기업 세습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이런 범죄를 봐주는 데 익숙한 관료와 엘리트들이 사회 곳곳에 박혀있는 현실에서 놀라운 사실은 아니다.

 

극심한 사회 양극화, 특권계층화, 사회전체에 만연한 부패,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임을 직시해야 한다. 남미의 여러 나라들이 보여주듯이 이런 수렁에 빠진 나라는 발전할 수 없다. 빠져 나올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개발경제학자들은 한국 경제 고도성장의 원동력을 기회평등, 높은 교육열과 인적자본에서 찾았다. 시대가 바뀌어도 이런 우리의 자산은 변할 수 없다. 오랜 기간 불평등이 지속될 때 경제발전이 어려워진다는데 반대할 경제학자들은 없다.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강화하여 정부의 소득재분배기능이 정상화되어야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고 공정한 시장질서가 정착하는 데 총력을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극심한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고 경제의 혁신동력이 마련된다. 경기가 나쁜 것은 이런 개혁의 역풍이 아니라 순풍이 되어야 한다. 많은 개혁과제들은 확장적 재정정책과 생산적 투자를 유발하여 경기를 회복하는 순기능을 한다. 모든 성과는 평균치의 개선이 아니라 평균을 구성하는 전체 분포의 건전성에서 찾을 때다.

 

<주병기 서울대 교수·경제학과>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