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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경제학자 갈브레이드는 <풍요로운 사회>라는 저서를 발간한다. 냉전이 근본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던 이 시기, 인류는 대중들이 풍요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중산층 가정에 세탁기가 보급되고, 스테레오를 집집마다 가지게 된다. 음반을 통해 음악을 아무 때나 들을 수 있게 되면서 원하는 때 언제든지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출 수 있게 되었다.

영화 <디어헌터>는 1968년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 참전으로 피폐해진 미국 노동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영화 이야기보다 기껏해야 제철소에 다니는 20대 노동자들의 삶의 질에 대해 놀랐다. 그들은 휴가를 내서 세단을 타고 라이플을 들고 사슴 사냥을 하는 것을 취미로 가지고 있었다. 1980년대 대학 시절, 나에게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실제 1990년대가 되었을 때, 현대자동차 공장에 업무 보러 들어갔을 때, 이미 우리의 노동자들도 어지간하면 승용차를 한 대씩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풍요의 시대, 생태에 관한 고민들이 본격적이고 대중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와 함께 생태적 문제들이 본격화되고,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은 인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에너지와 생태와 관련된 중요한 논문들은 이 시절에 많이 나왔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고, 중산층이 대량으로 소비하는 이 시대, 과연 우리의 미래는 무엇일까? 내가 공부한 이론들의 기본적 틀은 이 시기에 형성된 것들이다.

그리고 이제 2015년, 2010년대도 절반을 지나 후반으로 가는 시점이다. 명목적인 국민소득은 높아졌을지 몰라도, ‘풍요’가 우리의 특징은 아닌 시대가 되었다. 오히려 이 시대, 우리는 ‘결핍’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한국의 20대, 이제 뭐가 없다, 뭘 못한다, 그렇게 규정하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 일본은 더하다. ‘사토리’ 세대, 소위 득도한 세대로 불린다. 연애, 자동차, 이런 게 없는 것은 기본이고, 여행도 하지 않는다. 거의 득도의 반열이다.


그뿐이 아니다. 60·70대는 그 나이에 맞게 다양한 결핍을 호소하고, 50대는 ‘베이비 부모’라며 죽겠다고 난리이다. 공동체는 붕괴되고, 개인의 삶은 파편화되었는데, 그걸 막아줄 경제적 자산은 얄팍하다 못해 적자투성이가 되었다. 지금 우리에게 펼쳐지고 있는 이 찬란한 시대의 모습은 ‘궁핍’이 그 특징 아닌가?

그렇다면 이 시대에 생태주의는 무엇일까? 풍요의 시대, ‘자발적 가난’을 생태적 삶의 방식으로 생각하는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보편적 가난, 평균적 결핍의 시대를 맞고 있다. 그렇다면 풍요의 시대와 반대로, 우리는 더 생태적인 삶이 되어가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그렇게 볼 근거는 별로 없다. 이미지로서의 생태를 제외한다면, 4대강과 같은 기본적 토건은 마찬가지이고, 에너지 정책의 근본적 전환도 아직 우리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풍요의 시대에도 반생태, 결핍의 시대에도 반생태, 과연 우리의 미래는 어디에 있을까? 인간이란 존재, 아니 한국인이란 존재는 과연 물질적으론 결핍해도 영혼만은 풍요로울 수 있는 존재일까, 그런 삐딱한 질문을 한 번 던져본다. 강요된 결핍에서 우리가 찾아가야 할 다음 길은 무엇일까? 독자 여러분께, 각자 한 번쯤은 생태에 대한 질문을 이 연말에 해보시기를 부탁드린다.


우석훈 | 영화기획자·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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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