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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살게 되면 많은 문제가 과연 해결될 것인가? 경제학에서 이 문제에 관해서 가장 정통한 연구는 197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사이먼 쿠즈네츠의 실증적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쿠즈네츠의 가설에 의하면, 경제성장 초기에는 불평등이 증가한다. 하지만 일정 수준의 경제성장 단계를 넘어가면 오히려 경제적 불평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를 역U자형 함수 혹은 쿠즈네츠 커브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우리가 지겹도록 들었던 ‘파이’를 키우자는 얘기는 이런 쿠즈네츠 함수가 존재한다는 가설에 근거하고 있다. 초기에는 불평등이 늘어나지만 이 단계를 참고 버티면 언젠가는 개선되는 시점이 온다는 것이다. 쿠즈네츠의 연구는 자본주의 경제가 한참 어렵던 1930년대와 ‘영광의 30년’이라고 불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전후 복구 단계를 주로 비교하고 있다. 그는 1985년에 사망하였다.

<21세기 자본>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프랑스 경제학자 피케티의 분석은 쿠즈네츠가 사망한 이후에 벌어진 일들을 포함하고 있다. 쿠즈네츠 사후, 이 관계가 역전되었다는 것이 그의 논지라고 할 수 있다. 잘살면 문제가 해결되느냐, 잘살아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거나 오히려 심각해지느냐? 우리는 지금 이 논쟁 한가운데로 들어가고 있다.

이런 쿠즈네츠 함수가 환경 분야에도 도입되어 있다. 생태에서의 역U자 함수도 작동방식은 같다. 경제 발전의 초기 단계에는 환경 문제가 점점 심해지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이제 그 문제가 개선의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다. 생태주의자들이 기계적으로 경제성장이나 풍요에 대해서 반대만 하지 않는 것은 환경 쿠즈네츠 함수의 존재를 아예 부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생태사회, 생태경제, 주로 유럽 사회들을 모델로 하는 이론들의 배경에는 환경 쿠즈네츠 함수가 존재한다. 스위스나 스웨덴, 이런 나라들이 1인당 국민소득 6만달러를 넘어가던 시기를 잘 살펴보면, 사회와 경제의 생태적 전환이 일정하게는 존재한다. 1인당 에너지 사용량도 줄어들었고, 여러 가지 생태지표들이 좋아졌다. 그리고 농업에 대한 사회적 지지도 높아졌다. 이런 걸 보면 경제적인 것이 생태적이고, 생태적인 것이 또한 경제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예 거짓말은 아니다.


자, 우리의 문제로 돌아와보자.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3만달러, 이렇게 명목소득은 분명히 높아졌다. 그동안 개개인의 빚은 엄청나게 늘어났고, 안정된 직업은 눈에 띄게 줄어들게 되었다. 이제 청년들은 비정규직도 감지덕지, 파견직보다 낫다고 생각하면서 살게 되었다. 실질적인 가처분소득은 개선되지 않는다. 분명히 불평등한 사회가 되었다. 4대강과 원전이라는 눈으로 보면, 그렇다고 생태적으로 무엇인가 개선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경제적인 의미든 생태적인 의미든, 아름답던 시절의 쿠즈네츠 함수의 작동 가능성을 기대하며 여전히 낙관할 수 있을까? 아니, 쿠즈네츠 함수는 맞지만 우리는 실질소득이 줄어들고 있으니까 경제적으로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보는 게 맞는 것일까?

대혼동과 대위기의 시대, 여전히 우리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우리 모두 차분히 한 번 고민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조용히 기다리고 있으면 우리의 삶이 과연 나아질 것인가?


우석훈 | 영화기획자·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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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