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격변 속에 있다. 박근혜 정권은 이미 붕괴 과정에 들어섰지만, 아직 새로운 질서의 향방은 불투명하다. 시중에는 올해도 경제사정이 어렵지만 내년과 후년에는 더 심각할 것이라는 걱정이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미국, 일본, 중국의 내년 성장 전망치는 올린 반면 한국은 2.6%로 낮춰 잡았다. 세계적 차원의 지각 변동이 한반도에 총체적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깊다.

 

앞길은 아직 멀고 험하다. 그러나 낡은 질서로는 고난의 시기를 뚫고 나갈 수가 없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낡은 질서가 확연한 모습을 드러냈다. ‘박정희·박근혜 모델’은 1970년대 형성된 박정희 모델이 박근혜 정권에 의해 더욱 퇴행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제 ‘박·박 모델’을 대체할 새로운 질서를 모색해야 한다. 새로운 질서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첫 번째 과제는 박근혜 정권의 퇴진이다. 박 대통령은 3차 담화에서 국회의 탄핵일정을 교란하는 수를 던졌다. 그러나 대통령 면직의 기본방향은 진실과 국민들의 힘으로 이미 정해져 있다. 광장의 분노를 분산하려는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다. 이미 너무 많은 진실의 흔적들이 드러났고, 애덤 스미스가 말했던 ‘도덕감정’이 고양되고 있다. 진실 은폐의 비용은 너무 높아졌고, 언론·검찰·특검·국회의 진실 추적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소통네트워크 기반이 확충되어 시민들의 결집에 필요한 비용은 크게 낮아졌다. 촛불집회가 계속될수록 시민·청소년들의 정치의식이 확장·심화되는 데에는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정치적 각성이란 측면에서 보면, 박 대통령의 술수는 시민사회에 불리할 것이 없다. 시간을 끌수록 친박 정치집단은 더 철저하게 괴멸할 것이다.

 

두 번째로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수립하는 일인데, 쉽지 않은 과제다. 박근혜 정권과 친박 집단이 무너지고 있지만 정치권이 이에 기여한 바는 많지 않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 의혹, 최순실의 실체 확인, 청와대와 연결된 증거 제시 등의 노력은 언론의 몫이었다. 새누리당은 국기문란 정권을 세운 책임이 있고, 야당 역시 이를 제대로 검증·견제하지 못한 과오가 있다.

 

지금까지도 많은 국민은 정치권에 믿음을 주지 않고 있다. 분단체제하에서 보수세력은 강고한 기반이 있다. 새누리당은 붕괴의 길을 가고 있지만, 건전한 보수세력이 조직되는 것은 필요하다. 야권은 책임성과 수권능력을 국민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특히 다수 의석을 지닌 민주당이 야당들 사이의 협치와 연립의 규칙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권 퇴진 이후 경제 및 외교안보 위기가 밀어닥칠 수 있다. 권력을 독식하고 독선의 길을 가는 세력은 위기 앞에서 ‘독박’을 쓰게 되어 있다.

 

세 번째 과제는 ‘박·박 모델’을 대체할 경제모델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역시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결집된 시민의 힘에 기대어 길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박정희 모델의 퇴행적 요소들을 극적으로 집합한 사건이다. 나라 전체의 앞길에 대한 시야를 지니고 사건들을 끈질기게 파고들면 전환의 계기들을 찾을 수 있다.

 

한국경제의 위기적 현상은 저성장과 불평등으로 나타나지만, 그 현상의 이면에 소수 기득권자 네트워크의 약탈행위가 뿌리 깊게 존재한다. 한국경제에는 부당한 지대추구 행위가 만연해 있다. 지대추구란 기득권 집단이 법과 제도를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이득을 포획하려는 행동이다. 지대추구경제가 법질서를 넘어 자의적이고 약탈적으로 전개되면, 그것은 ‘도둑질’ 또는 ‘도적경제’라 지칭할 수 있다.

 

지대경제에서 한발 더 나아간 도적경제는 사회구성원들의 도덕감정을 크게 자극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최상층 국가권력을 농단하여 공공의 자산을 도둑질한 자들을 햇빛 아래 끌어냈다. 지금까지 나타난 바로는 공공자산을 약탈한 도적경제는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권력비선과 관치경제의 네트워크, 일부 재벌경제와 권력비선의 결탁, 불법적 부동산 개발과 거래 등이 그것이다. 이들을 철저하게 파헤치면 도적경제, 즉 ‘박·박 모델’의 핵심 요소를 잡아낼 수 있다. 지금은 국민들의 마음속에 있던 도덕감정, 즉 정의로운 분노가 결집되고 있는 때다. 우리는 약탈적인 ‘박·박 모델’을 깨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갈 기회를 앞에 두고 있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