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을 4번 만났지만 투자나 고용계획에 간섭한 적이 없다. 기업이 자율적으로 판단해 결정하는 것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3일 자신의 이름으로 낸 입장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청와대가 “재벌의 팔을 비틀거나 투자를 구걸하는 것처럼 오해될 수 있다”며 6일 김 부총리의 삼성전자 평택공장 방문에 맞춰 예정돼 있던 삼성의 투자계획 발표를 미루도록 했다는 보도가 나온 뒤였다. ‘구걸’이라고 하면 정부가 재벌에 이끌려 재벌개혁 등의 과제를 포기한 것처럼 들린다. ‘팔 비틀기’라고 하면 정부가 재벌을 핍박한다는 인상을 준다. 진실은 ‘조율’에 있다고 생각한다.

 

김 부총리와 만난 날 LG(2017년 12월)는 올해 1만명 고용, 현대차(2018년 1월)는 5년간 23조원 투자, SK(2018년 3월)는 3년간 80조원 투자, 신세계(2018년 6월)는 3년간 3만명을 고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경우 지역상권 보호를 위한 출점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요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규제혁신의 1호 대상으로 의료기기 업종을 꼽았는데 SK, LG, 삼성전자 모두 원격 의료기기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SK, LG, 현대차는 중소기업과의 상생방안으로 상생협력기금을 내놓는다고 했고 신세계는 중소기업의 유통지원을 약속했다. 원자재나 임금상승에 따른 납품단가연동제 등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한 구조적인 대안은 빠져 있지만 기재부와 해당 대기업이 공동 발표하는 보도자료에는 대기업의 자체적 상생방안으로 소개된다. 투자와 고용계획은 그런 조율 끝에 나왔을 것이다. 조율된 정책을 들여다보면 기존의 재벌체제를 강화하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조율된 투자계획을 내놓는 자리에는 항상 조율된 정책이 있었다. 투자계획은 대대적으로 소개되고 조율된 정책은 최대한 숨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김 부총리와 대기업의 만남에는 불편한 시선이 따른다. 김 부총리와 삼성전자의 만남은 어떠할 것인지 궁금하다.

 

<박은하 | 경제부>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