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에버트 재단이 조직한 ‘아시아의 사회적 보호를 위한 포럼’이 11월 4일과 5일에 걸쳐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개최되었다. 열 몇 개의 나라에서 참가한 사회복지 정책 관련 전문가들의 토론을 보면서 먼저 복지 확장에 대한 열망은 우리나라에만 고유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절감하였고, 또한 21세기 산업사회에서 복지가 갖는 의미에 대한 지구적인 광범위한 합의가 새롭게 출현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먼저, 복지와 경제 성장의 관계는 더 이상 적대적이거나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가 서로 분명한 선순환 관계에 있다는 생각이 널리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한정된 자원을 자본 축적과 투자로 돌려야 하며 이를 복지로 써버리는 것은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게 기존의 통념이었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인 1960년대부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구나르 뮈르달과 같은 이는 스웨덴과 북유럽 경제의 예를 들면서 이러한 통념이 잘못이며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안정된 사회 보장이 필수불가결의 요소임을 주장한 바 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량이 지난 오늘날 이러한 생각은 여러 국제기구에서 내놓은 보고서들에서 반복되고 있다. 지난 3년간 아시아개발은행(ADB), 국제노동기구(ILO),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한결같이 경제 성장에 있어서 복지의 확장을 통한 사회 보호가 결정적인 요소임을 논리적으로 실증적으로 입증하는 중요한 보고서들을 내놓았다. 갈수록 생산 요소에서 ‘인적 자본’이 중요해지는 오늘날의 산업 구조에서 누구도 배제되는 이가 없이 사회적 정의가 지켜지도록 하는 복지와 사회 정책이야말로 노동 생산성은 물론 사회 전체의 건강한 구매력을 유지하여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종합적이며 보편적인 복지 정책을 단순히 경제적 정치적 목표 달성의 도구로만 보거나 다른 나라와의 경쟁 수단으로 보는 관점을 넘어서, 복지로 수혜를 받는 이들의 당당한 권리로 보는 관점이 확립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도 복지와 종합적인 사회 정책의 시도가 없지 않았으나, 이것이 이런저런 국가 경영이라는 정치적 경제적 목표 수단을 넘어서서 마땅히 모든 시민들이 누려야 할 권리라는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복지가 논의되고 확립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대로 복지를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의 역량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로 보는 인간 발전의 개념에서 해석하게 되면, 이러한 권리 기반의 복지 개념이 확장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3일 오후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내년부터 도에서 지원하는 학교 무상급식 예산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_ 연합뉴스


세 번째, ‘복지국가’는 발달된 서구 선진국에서나 있을 수 있는 것이며 신흥시장국이나 개발도상국들과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라는 통념도 무너지고 있다. 방금 이야기한 발전되고 확장된 복지 개념이 논의된 장은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의 국제 포럼이었다. 먼저 동남아 10개국으로 구성된 아세안(ASEAN)에서는 2013년 10월 ‘사회 보호 정책의 강화를 위한 선언’을 통하여 권리 개념에 기초한 종합적인 복지정책 도입의 필요를 강조하였고, 올해 6월 중국을 포함한 개발도상국 모임인 G77이 내놓은 ‘산타크루즈 선언’은 모두에게 최소한의 생활 수준을 보장하는 복지정책이 개발도상국들의 새로운 발전 모델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입장을 천명하였다.

답답한 일이지만 아직도 이러한 관점은 한국 사회에서 ‘급진적’인 것으로 치부되기 일쑤이다. 고작해야 복지란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돈의 여유가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일종의 ‘사회적 사치’이니 우선은 파이의 크기를 키우기 위해 경제 성장에 전념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직도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진정한 부란 곧 사람이며 사람의 역량 개발이야말로 경제 성장의 진정한 동력이라는 생각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경제란 ‘허리띠를 졸라매고 공장과 빌딩을 세우는 것’이라는 ‘공구리 경제’ 패러다임에 붙들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기빈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KHross
T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