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핀은 마약의 일종이다. 그렇지만 진통의 효과가 있어서 총상 등 부상을 당한 병사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을 때 완화하는 약품으로 사용한다. 이 정도가 내가 아는 모르핀에 관한 전부이다.

이 모르핀에 관한 얘기를 진지하게 나에게 처음 들려준 사람은 김광수경제연구소의 바로 그 김광수이다. 토건으로 달려가는 한국 경제가 내놓는 수많은 부동산 관련 대책을 ‘모르핀’이라는 말로 그가 정리하였다. 나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한국에서 경제라는 이름으로 나왔던 주요 대책들은 기본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을 높이거나 유지하는 정책이 한 부류, 나머지는 어떻게든 환율시장에 개입해서 수출을 늘리는 정책이 또 한 부류였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조세에 관한 것들이 좀 있었다. 다른 나라 같으면 산업정책이 차지하는 비중을 우리나라에서는 토건정책이 차지했다. 전체로 본다면 어떤 산업을 더 키우거나, 어떤 산업을 치환해야 한다는 이런 고급 논의는 최소한 지난 10년간 진행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 반면에 아파트 가격을 유지하기 위한 대책들은 꼼꼼하고 세밀하게, 극단적인 마이크로 단위까지 진행되었다.

이런 연장선 위에서 본다면 초이노믹스라고 사람들이 부르기 시작한 그 경제 대책의 근간은 ‘좀 더 강한 모르핀’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내민 고강도의 모르핀 포장지에는 ‘소득 주도형 성장’이라는 라벨이 붙어 있다. 라벨이 뭐든, 포장지를 어떻게 디자인하든, 그것이 모르핀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모르핀 대책에는 부작용이 따른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성이다. 마약이 대부분 그렇다. 좀 더 강한 투약이 필요한데, 더 강하게 투약해도 예전만 한 효과가 나지 않는다. DTI, LTV 이런 주택 관련 대출에 관한 안전장치는 MB 정부 때에도 풀면 안된다고 묶어놓고 있던 것이다. 수직증축 리모델링이라고 부르는, 다른 사람들의 돈을 들여 자기 집을 고치는 방식도 안전하지 않다고 했다. 이제는 모르핀에 내성이 생겼다. 이 정도 풀면 집값이 활화산같이 불타오를 것이라고 얘기하는 업자들이 있었지만, 내성이 생겨서 ‘약발’이 안 듣는다.


사람들한테 좀 더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이제는 한국은행의 근간마저도 흔들었다. 한국은행법 3조 ‘한국은행의 자주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이 조항이 과연 지켜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개인들에게 빚내라고 한국은행이 결정을 하자마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약해진 원화’를 던지기 시작했다. 기준금리를 낮추면 코스피가 내려갈 것이 불보듯 뻔하지만, 이미 모르핀에 중독된 환자들은 주식 안정성도 포기할 정도로 판단능력이 흐려졌다.

모르핀의 다음 문제점은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더 많은 마약, 이게 개인에게는 가계대출이고, 정부에는 재정건전성 포기이고, 시간으로 보면 다음 세대에게 주는 민폐가 된다. 모르핀을 사기 위해서 개인이든 정부든, 계속 돈을 내는 것, 이걸 언제까지 할 것인가? 담뱃값 올리고, 범칙금 칼같이 걷고, 꼼꼼하게 개인들에게 세금 물리는 것, 그게 모르핀 투여의 비용이다.

경제 관료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 당신들이 쥐고 있는 대책이 모르핀이 아니라고 양심을 걸고 말할 자신이 있는가? 나는 초이노믹스는 모르핀 중독 현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석훈 | 영화기획자·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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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