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학에서 보통은 K라고 부르는 변수가 있다. 영어로는 carrying capacity, 우리 말로는 환경용량 혹은 수용능력이라는 말로 번역된다. 간단히 말하면, 그 생태계에 얼마나 많은 개체군이 존재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이걸 식물과 동물 즉 생태계가 아니라 인간의 세계에 대한 은유로 가지고 오면 1차적으로는 총인구수 같은 게 된다. 가상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해보고 싶었던 논의이기도 하다. 도대체 전 세계에는 몇 명이나 살 수 있느냐, 우리나라에는 몇 명까지 살 수 있느냐, 이런 얘기들이 된다. 맬서스 시절에는 농업의 결과물인 식량이 급격하게 늘기 어려울 것이므로 인구 증가에는 자연적으로 제약 조건이 걸린다고 생각했다. 20세기 초반, 화학비료와 제초제가 공급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식량 잉여가 문제가 되는 시대가 열렸다.

자본주의 시대, 사람과 자원은 돈을 따라 배분된다. 일자리가 있는 곳으로 사람이 모이는 것은 기본이다. 서울 강남 대치동 모델은 학원이 있는 곳으로 학생들이 모이고, 중산층 부모가 모든 것을 희생해서 움직인다는 모델이다. ‘다다익선’, 한국의 강남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법칙이다. 강남이 원래는 계획도시였는데, 당시에 생각했던 적정인구를 넘어선 지 오래됐다. 도로는 포화되었고, 교통은 지옥이고, 녹지는 박제화된 작은 공원에 갇혔다. 그러면 보다 쾌적한 삶의 여건을 찾아 상류층부터 보다 넓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선진국의 일반적인 도시 발전의 단계이다. 파리의 생제르망을 비롯해서 LA의 베벌리힐스 등 부유층의 집단 거주지는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형성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강남은 특이하다. 이제는 잘사는 사람들이 강남을 떠날 때도 되었는데, 여전히 재건축하면서 더 높은 집적도로 생태적 수용능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듯하다.


강남 3구로 표현되는, 그곳의 구청장들은 자신의 지역에 더 많은 시설과 인구를 유입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건 이해되는 일이다. 그렇지만 그걸 전체적으로 조율해야 하는 서울시장의 관점에서, 보다 복합적인 수용능력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렇게 구차원의 문제는 아니지만, 도시라는 관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명확하게 수용능력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구현된 게, 당시 개발도상국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그린벨트를 설정하였던 것이 아닌가? 그린벨트는 생태적이기도 하지만, 특정 지역이 비대해지는 것을 막으면서 자연스럽게 수용능력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게 조율해주는 기능도 한다.

제2롯데월드, 현대의 한전 본사 사옥 매입 등 최근 강남 일대에 있는 메가 사이트들의 특징은 사회적·생태적 수용능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사업이라는 점이다. 교통정체, 대기오염, 지하수 안전성, 이런 것들이 그 지역의 수용능력과 관련되어 있다. 단위 사업별로는 ‘별문제 없다’고 하더라도, 이런 것들을 전체적으로 집계하면 문제가 안될 리가 없다. ‘다다익선’과는 조금 다른, 균형과 조화 그리고 수용의 극대치, 이런 것들이 정책 목표에 탑재되어야 할 시점이 왔다. 이걸 넘어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태학자인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를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다. 이제 강남에는 다다익선 다음 단계의 전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서울시의 어정쩡한 ‘문제없다’는 접근법, 진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우석훈 |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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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