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어떤 삶을 만들어줄 것인가, 이 질문은 오랫동안 한국에서 방기된 것이었다. 영어로 ‘일하다’ ‘공부하다’는 ‘work’로 같은 단어이다. 불어도 ‘travailler’로 같다. 노동의 관점으로 보면, 20세기 들어오면서 이미 정착된 8시간 노동제에서 학생들만 예외이다. 선행학습과 영어학습으로 점철된 사교육 그리고 0교시 수업과 ‘야자’로 대표되는 공교육, 이건 아동학대 수준이다. 유엔 등 국제적으로 청소년 인권에 관한 수많은 논의가 있지만 우리만 이 논의를 비켜가고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전격적으로 도입한 9시 등교제는 우리가 가야 할 미래의 한 모습을 보여준 반가운 사건이다. 시작은 경기도지만 다른 지역으로도 점차 확대되어 갈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학생들이 오전 9시에 등교하는 것만으로 엄청난 변화가 생겨날 것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이건 방향에 대한 시사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저녁이 있는 삶, 아침 먹고 다니는 학생과 직장인, 이게 일단은 방향 아닌가?

그렇지만 모두가 이 9시 등교제에 대해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통학 시간이 집중되면서 마을버스 사업자들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건 버스 공영제 혹은 준공영제 등 공적인 논의의 틀에서 풀 문제로 보인다. 그리고 또 다른 불만은 맞벌이 부부들로부터 튀어나왔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학교에 데려다주었는데, 9시까지 보내라면 이제 어쩌란 말이냐?’

경기도의 경우는, 아침에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을 위해 특활 등 취미활동 같은 별도의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형편상 학교에 일찍 올 수밖에 없는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준비된다면, 부모가 등교시키는 문제는 일단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9시 등교제가 의도한 장기적 정책 목표에 적합한 방식은 아니다. 부모가 맞벌이라고 해서 그 자녀들에게 아침잠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것은, 좀 가혹한 일이다.


중·고등학생이 버스를 타고 등교하기 어려운 경우는 아직 상상하기 어렵다. 대체적으로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이 이런 문제에 부딪힐 텐데, 이 문제를 공공의 방식으로 푸는 것은 어떨까 싶다. 지금도 농촌의 대중교통 소외지역에서는 통학버스를 운행한다. 이걸 9시 등교제에 맞춰 도시지역의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늘리는 것은 불가능할까?

생태적으로 보자면, 개별적으로 자녀를 등교시키는 승용차 운행이 줄어드니까 이익이 된다. 좀 멋지게 말을 붙이면, 생태도시의 한 방안이라고 할 수도 있다. 버스업계의 반발도 예상할 수 있지만, 어쨌든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최소한 준공영제 정도는 한다고 했으니까, 도정과 연계하면 장기적 해법을 도출할 수 있다. 이걸 무상으로 할 거냐 아니면 돈을 내게 할 거냐, 이미 무상급식에서 한바탕 했던 그런 기술적 논쟁에도 부딪히게 된다.

수요조사를 해서 통학버스가 필요한 학생들 중심으로 버스 운행방안을 만들어보면 좋겠다. 시범사업도 해보고, 그렇게 점차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 9시 등교제에서 맞벌이 부부 자녀들도 소외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을 것 같다. 아침마다 초등학교 정문 앞에 늘어선 승용차,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이제는 찾아보자.


우석훈 | 영화기획자·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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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