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외국 소설을 보면 오트밀에 관한 얘기가 아주 많이 나왔다. 우리 문화 속에서는 접할 기회가 전혀 없어서 정말로 오랫동안 궁금했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아침에 오트밀을 먹을 기회가 생기면 주저 없이 약간이라도 맛을 보았다. 엄청나게 맛있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술 먹은 다음 날 먹으면 속이 편하다. 특별한 맛이 있지는 않지만 대개 주식들이 그렇게 특별한 맛이 없는 것처럼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아침 식사가 되었을 법하다.

우리나라 소설 등 문학에서 오트밀에 관한 얘기를 본 기억은 없다. 오트밀을 만드는 곡식, 귀리에 관한 것도 역사책에서 잠깐 본 것 외에는 특별한 기억이 없다. 한국과는 아주 먼 종류의 곡식이라 오트밀에 관한 것 외에는 귀리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올해 캐나다와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서 귀리가 한국으로 물밀 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홈쇼핑식 표현으로는 ‘난리났습니다, 완판입니다’, 그런 상황이다. 지금까지 미국을 비롯해서 칠레 등 수많은 FTA 체결과 발효 과정을 지켜보았는데, 이번처럼 즉각적이고 문화적으로 격렬한 현상이 생겨난 것은 처음 본 것 같다.

마케팅 과정은 간단하다.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10대 슈퍼푸드’라는 문구 하나, 이걸로 소위 ‘올 킬’이다. 여기에 혈당을 낮추어주는 작용이 있다는 문구 하나만 추가하면, 그 누구도 저항하기 어렵다. 그새 마케팅에서는 ‘당뇨밥’이라는 별칭을 만들어서 퍼뜨리는 중이고, 지금까지 다이어트 음식 등 수많은 건강보조식품들이 사용했던 필승의 마케팅 공식을 그대로 따라가는 중이다. 홈쇼핑의 쇼 호스트 설명을 차분하게 지켜보고 있다 보면, 갑자기 우리 모두는 순식간에 불효자식 혹은 악덕 부모가 된 듯한 느낌이다. 건강이 좋지 않은 부모님에게 아직도 귀리밥을 해주지 않느냐, 한창 성장기의 아이에게 이걸 먹이지 않는다면 부모로서 미안하지 않으냐,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들 지경이다.

식품기업 닥터오트커 홍보도우미들이 귀리로 만든 자사제품을 홍보 중이다. (출처 : 경향DB)


우리 식습관에서 귀리는 밥 지을 때 같이 섞는 곡식인 현미나 찹쌀의 대체재이다. 문화적으로 맞지 않는 오트밀을 먹는 건 아니다. 자, 이 시점에서 우리도 한 번은 판단을 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비록 곡물 중에서 소수파이기는 하지만, 국내에서도 귀리가 생산된다. 앞으로 정말로 귀리가 대세라면, 지금이라도 국내 생산을 늘리기 위한 시도를 하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대개 이런 건강식으로 포장된 상품이 한때 반짝하다가 몇 년 버티지 못하고 물러간 것이 맞다면, 한때의 유행으로 치부하면서 보수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맞다. 그냥 캐나다산 귀리가 생태적으로 옳지 않다 혹은 지나치게 많은 거리를 이동하기 때문에 너무 많은 연료를 사용한다, 이렇게 치부하고 말 것은 아니다. 인근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 소위 ‘푸드 마일리지’라는 관점에서 로컬푸드 운동이 우리나라에서도 한창이다. 미안하지만, 홈쇼핑은 로컬푸드와는 상극에 있는 마케팅 기법이다. 전국을 하나의 권역으로 단일 채널망에서 전국 동시 발송이 기본 시스템이다. 게다가 외국산이라도 가격만 맞고 품질만 맞으면 오예, 땡큐! 캐나다산 귀리든 국산 귀리든, ‘드루와, 드루와!’

늦더위가 극성이고, 그 어느 때보다 이른 추석을 보낸 요즘, 장안에서는 그야말로 귀리가 대세다. 한·캐나다 FTA 이후, 사람들의 귀리밥 열풍을 어떻게 볼 것인지, 잠시 명상이 필요하다. 경제와 생태가 만난 경계선에서 찬란하게 피어난 귀리밥, 이걸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국산 귀리냐, 캐나다산 귀리냐, 그것이 문제로다!


우석훈 | 영화기획자·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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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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