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것도 아닌 손잡이 때문에 해야 할 일을 못하니까. 지금 내 기분이 그래, 어이가 없네.” 인기 영화 <베테랑>의 주연배우 유아인이 한 대사다. ‘어이(어처구니)’는 매우 중요한 사물이나 인물을 뜻한다. 진짜 어이가 빠진 일들이 한국 사회에는 비일비재하다.

 

지난 18일 강릉 펜션의 고교생들 참사도 마찬가지다. 이 사고에 몇 가지 문제들이 얽혀 있다. 먼저 수능 후 사실상 방치하다시피 하는 교육시스템의 구멍이다. 우리 학생 때도 학력고사 이후 봄 졸업 때까지는 잘 쉬었다. 다만 적어도 공식 방학 전까지 학교는 꼬박 다녔다.

 

요즘 학교는 어떤가. ‘체험학습’ 따위로 대충 둘러대면 어딜 가든, 뭘 하든 눈감아준다. 이맘때쯤이면 학교를 며칠 땡땡이치는 아이들도 실제로 있다. 이미 변질된 지 오래인데도 교육당국이 뒷짐 진 꼴이다. 다음은 보일러 문제다. 진짜 벌집 탓인지, 연통 연결부의 시공 잘못인지 등은 수사로 밝힐 사안이다.

 

18일 강원 강릉시 경포의 한 펜션에서 수능시험을 끝낸 서울 대성고 3학년 남학생 10명 중 3명이 숨지고 7명이 의식이 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강릉 아산병원 고압산소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던 학생이 응급의료센터로 이송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더 직접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가스누출 경보기다. 이번 뉴스를 접하는 순간 경보기에 더 눈길이 갔다. 가스가 샜더라도 경보기만 울렸다면 이런 참사는 피했을 수도 있다.

최근 지역난방에서 개별난방 방식 주택으로 이사했다. 강릉 펜션 사고를 접하고 걱정돼 퇴근하자마자 보일러실부터 열어봤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경보기가 안 보인다. 천장에 둥그런 물체가 달렸길래 살펴보니 자동소화기다. 즉, 연기나 불이 났을 때나 작동한다. 일산화탄소가 뭔가. 무색, 무취하다. 경보기가 울어주지 않으면 알 길이 없다. 차라리 연탄가스는 특유의 냄새라도 풍기지만…. 몇 해 전 한 공장에서 일산화탄소 중독 사망사고를 당한 직원들은 작업장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쓰러졌다고 한다. 이런 작업장에도 경보기가 필요하다.

 

경보기 하나 살까 해서 온라인쇼핑 사이트를 검색했다. 저렴한 건 5900원 정도다. 즉 3명의 목숨과 맞바꾼 값이 고작 5900원이었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자율주행, 인공지능까지 강조하며 앞만 보고 달려온 첨단 정보기술(IT) 국가의 맨얼굴이다.

 

가스보일러를 쓰는 곳 중에 일산화탄소 누출 경보기가 달린 곳은 얼마나 될까. 당국은 실태 파악부터 하고, 국회는 법을 개정해 경보기 장착을 의무화해야 한다. 경보음은 집 밖에서도 들리도록 하는 방안까지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어떤 나라는 일산화탄소 경보기가 의무적이라고 안다. 설치 위치도 천장에서 몇㎝ 식으로 꼼꼼히 제시돼 있다. 국내에는 일정 규모 이상 공동주택에만 가스누출 경보기가 설치된다. 다만 일산화탄소까지 감지가 되는 건지, 그냥 연료가스 누출 경보용인지도 이참에 따져보자.

 

이런 사고는 단지 안전불감증 탓이 아니다. 비용절감을 통한 이윤 극대화를 좇는 천민자본주의의 그늘이다. 지난 11일 충남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스러져간 비정규직 고 김용균씨 사고와도 맥이 닿아 있다. 김씨가 위험을 피하게끔 지급됐어야 할 손전등은 또 얼마짜리였을까.

 

영국 같은 나라는 산업재해를 낼 경우 무려 연매출의 2.5% 넘게 벌금을 내고, 심하면 징벌적 벌금도 매긴다고 알려졌다. 자칫 문 닫을 각오로 안전을 챙기라는 취지다. 산재를 ‘기업살인’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우리 아이들, 동료들은 어디서든 극한의 벼랑 끝으로 내몰릴 것이다. 갑자기 땅이 꺼지거나, 뭐가 떨어지거나, 질식되거나…. 올해 처음 달성한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가 아니라, 안심하고 살 만한 곳이 곧 선진국이다.

 

요새 경제가 어렵다고 야단법석이다. 그러나 나라의 빠진 ‘어이’를 되찾는 일도 차곡차곡, 때론 급히 서둘러야겠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을 지지한다. “이게 나라냐”는 탄식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지금 국민들 기분이 그렇다.

 

<전병역 산업부>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