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오늘의 논점에 들어가기 전에 몇몇 독자들이 궁금해할 사실 두 가지 밝힌다. 첫째, 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감(私感)이 없다. 단 한번도 사석에서 만난 적이 없는데 무슨 사적 감정이 있겠는가? 다만 공분(公憤)이 있을 뿐이다. 촛불정부의 대통령이 국민을 저버리고 기득권에 머리를 조아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둘째, 나는 민정수석실에 사감이 없다. 이번 정부에서 그나마 할 일을 하는 부서 중의 하나가 민정수석실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번 일에 기죽지 말고 앞으로 나가라. 다만 절대로 법을 어겨서는 안된다. 권력은 진실을 밝히고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한 수단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 문제는 그 정도로 하고, 오늘은 ‘모피아 해체’를 생각해 보자. 모피아란 구 재무부 경제관료들이 서로 똘똘 뭉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모습이 마치 이탈리아의 불법 갱 조직인 마피아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통상 금융위의 전·현직 관료를 지칭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왜 모피아를 해체해야 하는가? 그들의 존재가 금융산업의 발전에 장애가 되고, 정부의 정상적인 경제정책을 왜곡하는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특히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도저히 고쳐 쓸 수 없는 조직이 되었다. 그래서 해체해야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금융위가 무슨 잘못을 그리 했길래 300여명 남짓한 엘리트 관료조직을 날려야 한다는 말인가? 그 이유는 많다.

 

첫째, 금융위는 우리나라 재벌 특히 삼성과의 관계에서 너무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그 잘못을 전부 금융위가 주도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금융위는 최후까지 그 하수인 역할을 자임했다. 참여정부 시절, 삼성생명을 지배하던 에버랜드의 금융지주회사법 적용 배제, 계약자 배당 한 푼도 주지 않아도 된다면서 특혜에 특혜를 거듭하던 삼성생명 상장 등은 금융위의 전신인 금감위의 얼룩진 과거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이건희 회장의 금융실명제 위반과 관련하여 “차명, 도명 계좌도 실명계좌”라는 희대의 유권해석을 내리고, 그 이후 “차명계좌에는 과징금 부과를 할 수 없다”는 또 다른 유권해석을 내렸다. 그리고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이 유권해석을 내렸던 현직 금융위 국장을 보호하기 위해 금융실명법의 집행을 사실상 사보타주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분산투자를 장려하는 보험업법의 취지에 반하여 삼성전자 주식에 ‘몰빵’하던 삼성생명을 보험업 감독규정 ‘별표’라는 쥐꼬리만 한 규정을 가지고 온몸으로 방어해 준 사실이 들통났다. 그리고 이를 개정하라는 압박에 대해 아무런 논리 없이 바보 시늉을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소득세 차등과세와 과징금 부과에 사사건건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올해 삼성 방어의 금자탑은 삼바 사태에서 콜옵션 누락으로 적당히 때우고 넘어가려 했던 점이다. 금융위는 분식회계 처벌을 원하는 국민과 꼼짝도 하지 말라는 삼성의 눈짓 사이에서 나름 묘수를 찾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이것이 결정적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콜옵션 누락이 생각보다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태풍이었고, 금감원의 제2차 감리에서 삼바의 분식회계 모의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내부문건이 세상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코너에 몰린 금융위가 할 수 있는 짓이란 그저 밉기만 한 금감원에 C등급 평가 주고 예산 깎자고 덤비는 것뿐이었다. 이 얼마나 치졸한 노릇인가.

 

둘째, 금융위는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정상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관치금융의 본산이다. 관치금융은 마약이다. 정치가에게는 이것만 한 도깨비방망이가 없고, 국민들조차 때로는 그 마약의 단맛을 주문하기도 한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행정부 조직인 금융위가 좌지우지하는 것이 그 좋은 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채무자와 채권자가 회생법원 판사 앞에 가서 채무재조정을 하는 것이 핵심이다. 필요하다면 자본시장이 돈을 넣고 부실기업 중 나름 괜찮은 사업전망을 가진 기업을 인수할 수도 있다. 이것이 원칙이고 정부는 국민경제상의 긴박한 필요가 있는 일부 예외적인 사건에 한해 국민 세금을 가지고 구조조정에 개입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예외가 원칙이다. 언론이 앞장서 ‘정부가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게을리하고 있다’고 장탄식을 하고, 이해관계자들은 국민 세금을 따먹지 못해 안달이다. 정치권은 해당 지역에서 표 떨어질까봐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하자고 입도 뻥긋 못한다. 모피아는 바로 이 틈을 비집고 자신의 존재의의를 공고히 한다. 금융기관 팔 비틀고, 국민 세금 슬쩍 ‘삥땅’하는 더러운 일을 자임하는 것이다. 물론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을 앞장세워서. 그리고 그 일의 대가로 조직의 번영과 퇴직 후의 일자리를 보장받는다.

 

모든 정권이 선거 때는 자본시장에 기반을 둔 구조조정 원칙을 내세우지만, 집권만 하면 한시법으로 연명해 온 기업구조조정촉진법(소위 ‘기촉법’)을 연장하는 데 혈안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예외가 아니다. 대통령 관심사안인 은산분리 완화 법안조차 통과시키지 못하던 지난 8월에 보란 듯이 이 법안은 정무위를 통과했다.

 

관치금융이 판을 치는 곳에서 금융이 제대로 자랄 수는 없다. ‘금융산업 육성’을 위한 법안이 숱하게 쏟아졌지만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낙후되어 있다. 저축은행 발전을 위한다며 신나게 나팔 불었던 ‘8·8클럽’은 2011년 대규모 저축은행 구조조정이라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은행산업에 메기를 넣겠다면서 시작한 인터넷전문은행도 BIS 자기자본비율조차 지속적으로 충족하지 못하는 케이뱅크라는 중환자를 만들어냈다. 초대형 IB를 육성하겠다는 정책을 뜯어보면 어음 발행의 형태로 돈을 걷어 부동산 대출하도록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은행업을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모피아를 해체할 수 있을까? 나는 지난번 KDI 정책토론회에서 금융위 부위원장부터 장악해서 모피아를 해체하는 방안을 발표하려고 했다. 이 내용은 비록 발표 자체는 무산되었지만 여러 정책부서에 이런저런 경로로 전달되었다. 이제는 대통령의 선택만 남았다. 과연 문재인은 할 수 있을까?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