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우원식, 김두관, 손혜원, 박용진. 지난 9월20일 국회를 통과한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에 반대표를 던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의 면면이다. 천정배, 조배숙, 심상정, 추혜선, 김종훈, 지상욱, 채이배. 이 법에 반대표를 던진 야당 의원들의 면면이다. 물론 내가 잘 모르는 다른 국회의원들도 반대표를 던졌다. 전체적으로 민주당은 반대 13, 기권 16이었고,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평당은 반대 각 4, 민중당 반대 1, 바른미래 기권 1이었다. 자유한국당은 반대 0, 기권 3이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합의하여 통과시킨 이 법안에 대한 반대는 총 26인. 기권은 20인이었다.

 

나는 국회 전광판에 새겨진 투표결과 화면을 앞으로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나는 특히 이날 반대표와 기권표를 던진 민주당 국회의원들을 더 열심히 기억하려고 할 것이다. 재선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국회의원이 지지율이 60%를 오르내리는 대통령이 작심해서 요구하고, 공천권을 쥔 당대표가 밀고, 원내 사령탑인 원내대표가 각개격파를 하는 와중에서 이름을 걸고 반대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이 목소리는 진심을 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특례법이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 소위를 통과한 직후 금융위 대변인은 환한 얼굴로 기자실을 직접 찾아서 그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하다. 이 법이 통과되지 않았더라면 금융위 관료들이 박근혜 정부에서 케이뱅크 인가 때 특혜 주고 꼼수로 시행령 개정했던 잘못된 선택의 결과가 조만간 만천하에 드러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관료뿐만 아니라 어쩌면 문재인 대통령도 본인이 규제혁신 법안 제1호로 지명했던 법안이 8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수치를 어느 정도 씻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과 그 주변의 정치세력들은 이번 법안 통과를 통해 최종적으로 승리했을까? (남북 문제를 논외로 하고 논점을 경제 문제로만 한정할 때) 지난 8월 말의 상황보다 정치적 입지나 국정 장악 능력이 더 호전되었을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이번 강행처리를 계기로 경제정책에 관한 한 그 입지도 축소되고, 국정 장악 능력도 결정적으로 상실했다. 문 대통령은 경제정책에 관한 한, 더 심각한 패자로 전락했다. 왜 그럴까?

 

첫째, 문재인 대통령은 기존의 은산분리 원칙을 수정해야 할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문 대통령이 입증 책임을 져야 하는 까닭은 본인이 자신의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민주당의 강령에 배치되는 정책을 급하게 추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일까?’ 궁금해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입증의 필요성은 더욱 중요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3번의 민주당 정책의총과 수차례의 정무위 법안 심사 소위를 거치면서도 그에 대한 논거를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4차 산업혁명을 들먹였지만 그렇다고 왜 은행에 대해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야 하는지를 설명하지는 못했다. 결국은 원내 지도부가 나서서 “나를 따르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초라하게 끝맺음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원내 지도부는 모피아 관료들이 시행령을 가지고 밥 먹듯이 장난을 치는 상황에서 재벌(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진입 금지를 왜 법률에 규정하지 못하고 시행령에 규정해야 하는지에 관해 아무런 설명도 하지 못했다. 재벌이 시행령 하나 바꾸라고 압력을 넣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쉽다는 것을 몰랐다는 말인가. 더구나 이미 모피아는 케이뱅크 인가 과정에서 우리은행의 대주주 적격성이 문제가 되자 이를 막기 위해서 선제적으로 시행령의 문제 조항을 삭제하는 장난을 친 적이 있지 않은가. 이 시행령을 원상회복시키라는 정당한 요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시행령이 꼼수의 통로가 될 줄을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셋째,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원내 지도부는 중요 사항을 시행령으로 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시행령에서 정할 범위를 법률에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음으로써 포괄 위임 금지의 원칙을 실질적으로 위배했다. “이게 나라냐?”라는 촛불혁명의 구호 속에는 법과 원칙이 존중되는 나라를 보고 싶다는 국민들의 바람이 녹아 있었다. 그런데 촛불혁명의 적자임을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가 헌법의 중요한 입법 원칙을 실질적으로 위배한 것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현실적 필요성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라”는 국민들의 명령을 압도한 것이다.

 

넷째, 문재인 대통령은 은산분리 완화를 추진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핵심 집권세력들이 이 문제에 얼마나 무지한가를 여실히 드러냈다. ‘정보통신업종에는 예외를 허용하면서 재벌에게는 은행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약속이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공허한 주장임을 사전에 깨닫지 못한 것이다. 카카오가 정보통신업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재벌이기도 하다는 점, 삼성이 재벌인데 정보통신업을 하고 있다는 점 등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실제 입법과정에서 이 양립하기 어려운 명제를 동시에 담는 모양새를 만들기 위해 법안이 현란한 공중곡예를 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신뢰성이 여실히 붕괴했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 점이 문재인 대통령의 가장 큰 아픔일 수도 있다. 관료를 통제할 능력도, 사안의 밑바닥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사실보다 더 아픈 점은 문재인 정부의 말을 이제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신뢰가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라는 말을 앞세워 집권했다가, 정작 스스로가 그 말을 지키지 못해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제는 문 대통령이 ‘공약을 파기하는 대통령’의 차원을 넘어 ‘논리가 아니라 궤변을 앞세우는 대통령’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지지세력 일부가 어쩔 수 없이 등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나는 이것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개혁은 ‘종을 쳤다’고 단언한다. 반대의 예술을 터득한 야당을 뚫고 지지세력의 지원도 심드렁한 상태에서 무슨 개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신뢰가 깨진 지금, 찬바람이 살을 엔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