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모습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지난 5일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서울구치소를 나서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기자들에게 건넨 첫마디는 이랬다. “지난 1년간 나를 돌아보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더 세심히 살피겠습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가 말한 ‘좋지 않은’ 모습은 뭘까. 2016년 12월 국정농단 사건의 청문회에 등장한 그의 첫 소감은 “불미스러운 일로 실망감을 안겨드려 저 자신이 창피하고 후회되는 일도 많다”였다. 지난해 말 항소심 최후진술 때는 “실타래가 꼬여도 너무 복잡하게 엉망으로 엉켜버렸다. 실망하신 국민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죄송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일이 저와 대통령의 독대에서 시작됐다. 원해서 간 게 아니라 오라고 해서 간 것뿐이지만 제가 할 일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감안하면 그가 말하는 좋지 않은 모습은 국정농단 사건에 엮였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2월 5일 오후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선고가 열린다. 사진은 이날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 시민단체가 설치한 이 부회장의 조형물. 사진출처 : 연합뉴스

 

1938년 삼성상회 창립을 시작으로 80년 삼성 역사에서 삼성가 오너들이 고개를 숙인 것은 손꼽을 정도이다. 이건희 회장은 2008년 특검 조사 때 “저로부터 비롯된 특검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많은 걱정을 끼쳐드렸다”고 사과했다. 창업주인 고 이병철 명예회장은 1966년 경향신문 보도로 시작된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사과문을 냈다. 이들 사과문에 공통적인게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시민들의 도움으로 성장했는데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 소홀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삼성을 일류기업으로 키우는 데 힘을 합쳐 달라는 것이다. 이 명예회장과 이 회장은 모두 사과하며 은퇴를 선언했지만 공교롭게도 1년을 전후해 복귀했다.

 

사과가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삼성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이 부회장은 최후진술에서 “삼성 회장 타이틀을 다는 것 정도나 계열사 지분 늘리는 건 저한테 별 의미도 없었고 제가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고 말했다. “아버지처럼 셋째 아들도 아니고, 외아들이라 후계자 자리 놓고 경쟁하지도 않았다”고도 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승계작업을 위한 것이고 이를 위해 정경유착이 있었다는 특검의 주장을 부인하는 측면에서 이뤄진 것이라 해도 편법 승계로 얼룩졌던 지난날을 감안하면 오만한 발언이다.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이 아버지로부터 60억원을 증여받아 비상장 계열사 주식 매입을 거쳐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매입,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인수 등 편법으로 점철된 채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얘기이다. 2014년 5월 이 회장이 쓰러진 뒤에는 에버랜드의 제일모직 인수, 제일모직과 삼성SDS의 합병,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성사됐다. 잇단 작업으로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대주주가 되면서 삼성물산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까지 지배하게 됐다.

 

삼성은 승계작업이 아니라고 하고, 2심 재판부도 이 부회장 손을 들어줬지만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한 판결 등으로 미뤄보면 일련의 현안 전개가 승계작업이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남아 있지만 항소심 판결만으로도 그는 36억원의 뇌물을 공여, 횡령한 범법자이다.

 

삼성은 이 부회장 석방 뒤 평택 반도체 공장 투자계획과 금융계열사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일각에서는 시민들이 수긍할 만한 개혁안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그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자신이 아버지 세대와는 다르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해왔다. 최후진술에서는 “제 꿈은 삼성을 열심히 경영해 이병철의 손자나 이건희의 아들로서의 이재용이 아니라 선대 못지않은 기업인 이재용이 되고 싶다. 제 실력과 노력으로 초일류기업의 리더로 인정받고 싶다”고 밝혔다.

 

삼성이 오너경영 체제가 되든, 전문경영인 체제가 되든 그것은 사적 영역인 만큼 삼성이 선택할 몫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히 해둘 것은 승계 문제에 대해 솔직히 입장을 밝히고 그에 걸맞은 후속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편법 승계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후속작업에는 편법으로 일군 자신의 자산에 대한 사회적 기여 문제도 포함될 수 있다. 향후 있을 수 있는 4세 승계 문제에 선을 그어두는 것도 필요할지 모른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신들이 만들어준 꽃가마에 올라탄 채 스스로의 노력으로 훌륭한 기업인이 되겠다는 다짐은 자기모순이다. 시민들이 삼성에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는 것은 적개심이 아니라 채찍질이다. 잘못된 과거와의 단절 없는 이재용의 좋은 모습은 없다.

 

<박용채 논설위원>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