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을 끙끙 앓았지만 아직도 감기 바이러스가 내 몸 안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출근길에 휴대전화를 오랜만에 열었더니 “오늘 경향신문 마감일입니다. 빠른 원고 송고 부탁드립니다”라는 메시지가 뜬다. 고열과 근육통 속에서 머리를 헤집던 새해 기도, 그러니까 희망사항을 털어 놓을밖에….

 

문재인 정부는 2중의 위기 속에서 출발했지만 경제 쪽은 반도체 수출의 급증으로, 안보 쪽은 사드 문제의 기적적(그러나 임시의) 해결로 활로를 찾았다. 길은 열렸지만 앞날은 여전히 막막하다.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회복세를 띠고 있지만 미국발 “미친 사람”(트럼프)의 보호주의 압력이 세차고 반도체 경기란 기껏해야 2년을 넘기지 못한다. 연이은 북한의 도발에 미국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로 응답했고, 북한의 지도자는 기어코 핵전력의 완성을 선언했다.  물론 지난해 봄부터 시작된 양자의 거친 신호 보내기는, 그만큼 신뢰할 수 없어서 오히려 대화의 개시를 예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 적어도 전투는 우연한 계기로 터질 수 있다는 사실을 역사는 반복해서 보여주었기에 언제까지 살얼음판을 걸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작년 12월27일 정부는 금년 경제성장률이 3%에 이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세계경제의 예상 성장률이 3.7%이고 무역이 확대되고 있으며, 2016년 2.8%, 2017년 3.2%의 성장을 했으니 그리 튀는 수치는 아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어떻게 이런 수치가 나왔는지 의아해진다. 작년도 성장을 이끌었던 설비투자는 14.1%에서 3.3%로, 건설투자는 7.6%에서 0.8%로 증가율이 줄어든다. 수출 증가율 역시 15.8%에서 4.0%로 줄어들고 경상흑자도 20억달러 감소한다. 오로지 민간소비만 2.4%에서 2.8%로 증가하는데 현재의 가계부채를 고려하면 이 또한 별로 믿음직스럽지 않다.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중하위층의 소득이 상당 폭 증가한다 하더라도 많은 부분이 원리금 상환에 쓰이고 또 임대료 등으로 즉각 상층으로 이전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가 발표한 수치를 주먹구구로 작년의 실적과 비교해 보면 2% 정도의 실질 성장률밖에 나오지 않는다. 실제로 경상(명목) GDP는 5.7%에서 4.8%로 성장률이 1% 정도 떨어지는 것으로 발표됐다. 결국 물가상승률을 1% 정도 낮춰서 실질로는 거의 비슷한 성장률을 달성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하여 금년 중에 정부는 아주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재계와 언론, 그리고 관료들은 짐짓 고용을 내세워 부동산 경기를 일으켜야 한다고, 기술혁신을 위해 규제완화를 해서 성장률을 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이런 정책을 답습한다면 불평등은 더욱 확대되고 장기 성장률은 더 떨어질 것이다. 확실한 대안은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이다. 특히 녹색인프라, 정보통신 인프라 등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방향이 정해져 있고 기업들의 투자를 유발할 수 있는 부문에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는 새해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는 평창 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으며 올해를 남북관계 개선의 “사변적인 해”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냉정하게 말해 현재 상황에서 “비핵화”를 전제로 해서는 어떠한 대화도 시작할 수 없다. 자신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핵 억제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과, 예방전쟁까지 거론하면서 “선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 중 어느 쪽도 대화 개시를 위해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제안은 한반도 위기 해소의 활로를 열었다. 

 

미·중의 대립 구도와 북·미의 치킨게임 사이에서 발 디딜 틈이 없었던 문재인 정부에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다. “두고 보자”던 트럼프 대통령도 군사훈련의 연기에 찬성했고 중국은 물론 대환영을 표시했다.

 

북한은 이미 중국식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핵보유(그에 따른 경제제재)와 개혁·개방은 얼음과 불처럼 어울릴 수 없다. 국제교류가 많아지고 이에 따라 경제성장률이 높아질수록 북한은 스스로 핵보유 포기를 고려하게 될 것이다. 핵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든 김정은 정권의 안정을 보장해야 한다. 우리의 상상력과 설득력이 절실하다. 물론 보수정당과 언론, 그리고 일부 관료들은 안보 쪽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으려 할 것이다. 

 

모든 면에서 과감해야 한다. 예컨대 당장 스키 종목 일부를 북한이 자랑하는 마식령 스키장에서 연다든가, 3월의 패럴림픽을 북한과 공동 개최하는 것은 어떨까?

 

경제와 안보, 양쪽에서 운명처럼 닥쳐온 천재일우의 기회를 창조적으로 활용해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의 길을 열어야 한다. 무소의 뿔처럼, 촛불의 힘을 믿고….

 

<정태인 |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장>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