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세상을 위한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서울시민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백지화를 촉구하는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전 찬반은 크게 두 가지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탈원전 정책, 보다 정확하게는 ‘점진적인 원전 축소’ 정책에 대한 입장이다. 둘째, 공사가 시작된 신고리 5·6호기 완공 여부에 대한 입장이다. 두 기준을 토대로 네 가지 조합이 가능하다. 1) 탈원전 반대 및 신고리 원전 완공, 2) 탈원전 반대 및 신고리 원전 중단, 3) 탈원전 찬성 및 신고리 원전 완공, 4) 탈원전 찬성 및 신고리 원전 중단.

 

1)과 4)는 원자력 발전에 대해 일관되고 명확한 입장을 고수하는 조합이다. 각각 찬핵 및 탈핵 진영으로 불린다. 양 진영 사이에 가열한 논쟁이 한창이다. 2)는 탈원전 정책은 반대하지만 신고리 원전은 중단해야 한다는 조합으로서 논리적 일관성이 약할 뿐 아니라 현실에서 발견하기 힘든 조합이다. 원자력 발전은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이미 공사를 시작한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그만두어야 한다는 주장은 어색하기 때문이다. 3)은 원전 축소 정책은 찬성하되, 이미 시작한 신고리 원전은 완공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형적인 총론 찬성, 각론 반대 조합으로서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원전 축소를 바라지만 신고리 원전 건설은 찬성하는 입장의 근거를 살펴보자. 첫째, ‘매몰비용’의 유혹이다. 매몰비용이란 특정 사업 혹은 정책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의사결정 시점에서 ‘고려하지 말아야’ 할 비용을 의미한다. 이미 투입되어 회수가 불가능한 비용이다. 현재 신고리 5·6호기는 건설공정률 10.7%, 투입비용 1조5200억원에서 중단된 상태다. “이미 공사가 시작됐고 1조원 넘는 돈이 들어갔는데 여기서 멈추면 너무 아깝지 않나”라는 심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신고리 5·6호기 완공을 위해서는 아직 90% 공정이 남아 있고 7조6000억원이 추가로 투입돼야 한다는 의미다. 혁신적이고 지속 가능한 전력 수급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원전보다 안전하고 미래지향적인 대안이 있다면 이를 고려하는 것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가능에너지의 기술혁신 속도는 매우 빠르며, 발전단가는 낮아지고 투자액은 증가하는 추세다.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국내 기업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국내 시장이 활성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둘째, 건설 중인 원전을 중단하면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걱정이다. 자국 내에서 어떤 이유로든 원전 건설이 중단됐다면 해외 수출에 악재로 작용하지 않겠냐는 거다.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원전업계의 주장처럼 우리나라 원전 기술이 세계 최고라면 국내 상황과 무관하게 해외 시장 수주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건설업에서 보듯이 경쟁력 있는 기업과 산업이 국내 상황에 따라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우리나라의 국토 대비 원전밀집도는 세계 1위다. 신고리 5·6호기는 원전 7기가 운영 내지 운영 예정이고 인구 400만명이 밀집된 부산 지역에 추가로 건설된다. 누가 봐도 과하다. UAE 원전 수출 이후 해외 수주 건수가 제로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원전업계가 해외 시장 확보에 자신 있다면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 이제는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기술 등 급부상하는 에너지 시장에 눈 돌릴 때다. 세계 원전 시장은 금융위험이 크고 계약조건이 까다로운 반면, 300조원대의 재생에너지 시장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2000년대 초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과 벤처기업 육성 등 선제적인 투자로 ICT 분야 강국으로 발돋움한 경험이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 국민과 기업보다 행동이 빠르고 개척 정신이 뛰어나다.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차세대 에너지산업을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신고리 5·6호기로부터의 방향 전환은 그 상징적이고 실질적인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셋째, 전력공급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다. 1400MW에 달하는 대형 원전 2기 공급이 줄어들면 전력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신고리 4호기, 신한울 1·2호기 등 동일한 용량의 원전 3기가 올해부터 매년 1기씩 완공된다. 전문가들이 계산한 전력수급 예측에 따르면 신고리 5·6호기를 건설하지 않아도 당분간 전력 공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절약과 효율개선으로 에너지 수요를 줄이는 다양한 정책 또한 존재한다. 2022년부터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노후 원전이 생긴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문재인 정부 5년이 재생에너지 투자에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다.

 

시장 참여와 지역주민 수용성을 높여 에너지 전환에 대한 국민 신뢰를 얻는 것은 오롯이 새 정부의 몫이다.

 

<홍종호 서울대 교수·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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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