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자면 지난 10월27일자 칼럼 ‘탄핵 혹은 하야, 그 이후’에 관해 쓸 때만 해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뭉클뭉클 피어나는 의구심을 희망적 사고로 누르고자 안간힘을 썼다. 그 후로 몇 주가 흐르는 사이에 마침내 광장의 정치가 대의제 민주주의를 압도하면서 이끌고 가는 형국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람이란 얼마나 간사하고 나약한가? 마치 영원히 지속될 듯했던 군사독재가 끝나자 불의에 항거하는 치열한 청춘이었던 듯 스스로를 속였던 한 세대 전의 기억이 떠오를 정도이다.

 

물론 상황이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여론조사 결과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현재의 전선은 4 대 96, 후하게 잡으면 10 대 90의 구도를 갖고 있다. 이러한 전선에서 물색없이 자신의 정치적 편견을 주장하다가는 자칫 벼랑 밑으로 떨어지기 일쑤이다. 정치인은 물론 소설가나 연예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앞다퉈 인터넷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오르내리며 시쳇말로 영혼이 털리고 있다.

 

다수의 주장이 항상 옳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작금의 전선은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라거나 계급적·물질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것이 아니다. 민주공화국의 최소 요건, 혹은 인간에 대한 예의, 기본적 품격을 갉아먹는 모멸감과 관련된 문제이다. 문득 몇 달 전에 구입했으나 내용이 진부해 잊고 있던 <1%의 경제학>이라는 책의 제목을 떠올렸다. 지금 여기에서 4%의 경제학, 아니 그 반대로 96%가 추구해야 하는 경제학은 무엇일까라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그 어떤 절체절명의 위기에 다다를 때면 오히려 문제의 본질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수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가 아닐까?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출석한 재벌총수들이 증인석에 대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무엇보다도 전통시장을 돌면서 상인들과 악수하는 ‘민생’ 시찰이 민생과는 무관할 뿐만 아니라 실상은 많은 경우 민생을 방해하기조차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얼핏 보면 잘 안 보여도 자세히 보면 보인다”는 황당한 주장으로 이른바 창조경제를 옹호하던 전문가도 생각난다. 드러난 창조경제의 실체는 그렇게 억지논리를 펴던 이들뿐만 아니라 진지하게 비판하던 이들조차 허탈하게 만들었다.

 

오랫동안 경제위기 담론은 대부분 기득권층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안보담론 못지않게 애용돼 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노동개혁을 완수하지 못한 것이 한이라며 공식 석상에서 흘리던 청와대 수석비서관의 눈물까지 잊고 싶지는 않다.

 

28년 만에 되풀이된 재벌총수들의 청문회에서 드러난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적대적 공생관계는 굳이 말할 나위조차 없다. 규제를 암 덩어리라 부르던 권력자와 자유기업을 주장하면서 어버이연합에 뒷돈이나 지원하던 경제권력은 시장의 자유라는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날것으로 드러낸다. 그 밑에서 자유시장의 경제학만을 되뇌며 연구비 따내던 이들이 심지어는 대학에 강좌를 들이밀면서 취업 걱정에 지친 학생들을 볼모로 잡은 현실을 잊을 수 없다.

 

비원의 목표라는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1인당 국민소득 100명분에 해당하는 금액이라 한들 고작 어느 철없는 소녀의 말 타기 놀음에 흘러가는 돈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가십거리를 넘어 우리에게 각인된 경제성장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4 대 96의 전선이 사라진 뒤에 닥쳐올 새로운 전선, 이를테면 50 대 50의 전선의 양상은 이전 전선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민주화를 대통령 직선제로 정의하면 됐던 단순명쾌한 전선이 해체되고 난 1987년 겨울, 그 치열했던 투쟁의 결과는 다시금 군사쿠데타의 주역이 선거를 통해 집권하는 것이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4%의 경제학이 퇴각한 뒤에 닥쳐올 새로운 전선에서는 어떤 일이 펼쳐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아직도 불확실하기만 한 탄핵 혹은 하야의 전선에서 그러하듯, 저항과 견제는 끊임없을 것이며 더구나 먹고사는 문제가 걸릴 때 그 강도는 훨씬 더 세고 오래 지속될 것이다. 그 반대편에서는 4%를 위하는 것이나, 20%를 위하는 것이나 그게 그거라는 식의 근본주의적 목소리도 들리게 될 것이다. 광장의 촛불만으로 경제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우주의 기운’이 도와주는 이 계기를 살려나갈 때 비로소 4%의 경제학은 50%의 경제학으로, 다시 99%의 경제학으로 진화해 갈 것이다.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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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